핑퐁

from 기록 2006. 11. 6. 20:39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가 있다는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할 수 있는거니까. 그래서 생존해야 해. 우리가 죽는다 해서 우릴 죽인 수천 볼트의 괴물은 발견되지 않아. 직렬의 전류를 피해가며,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 - 그래서 생존해야 해. 자신의 9볼트가 직렬로 이용되지 않게 경계하며,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말이야.

결국 집단과 개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더 이상 자세히 표현할 자신이 없다.
명언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거다. 르네 지라르는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라고 말했다지?



요즘말로 상당히 아스트랄한 소설이다.
카스테라와 지구영웅전설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여전히 주인공으로 마이너(Minor)들을 내세우고 낯설은 문체도 그대로지만, 이상하게 <핑퐁>은 지루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왜 핑퐁이 재미없는지 생각해봤는데, 작가가 <핑퐁>에 너무 많은 걸 집어 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 왜 사냐고 물어보면 그냥 웃을수만은 없는 일이다. 오바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파고 들어가면 철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더 이상의 코멘트는 무리; 설렁설렁 읽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 지구가 내 머리위에 앉은 느낌이다. 머리 아프다. 박민규 특유의 위트가 사라진 것도 지루해진 원인 중의 하나. 슬슬 신선함이 떨어지는 듯 싶다.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그의 문체가 가독성을 해치는 원인일 수 있겠고.

독자들의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듯?




핑퐁
박민규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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