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서

from 기록 2017. 1. 10. 20:19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남자친구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MBTI 유형을 묻자, 남자친구는 자신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맛집 찾아다니기를 좋아하고 수많은 모임에 참석하며 카톡 프로필에 자신의 자동차 배경화면과 좌우명처럼 'Carpe Diem' 이라는 문구를 넣은 사람. 사귄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성과급을 캡쳐해 나에게 보여주었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한 말이 많은 사람. 현실주의자. 이런 남자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너무나 상반된 연인이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엄마와 여동생이 현실주의자고 나는 이상주의자라 대화가 힘들다는 말을 하자, 그는 자신도 현실주의자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허공에 떠 있는 내 다리를 붙잡아줄 오빠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남자친구의 무한한 긍정에 끌렸다. 그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종류의 따뜻함과 여유 그리고 낙천적인 기질의 소유자다.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지내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나를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웃을 뿐이다. 솔직히 추상적인 대화는 어렵다.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세상에 심각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대책없는 낙천성에 나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집안에만, 남자친구는 밖으로만 겉도는 건 아닐까. 연애를 시작한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또 거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업무를 소홀히 하며 하루종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친구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단순함이 부럽고도 신기하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보며 우리의 연애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친구에게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놓았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 불안하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남자친구의 기운을 받은 덕분인지 그새 성격이 긍정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어 그동안 만남에 소홀했던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나에게 닥친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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