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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액트 오브 킬링 2015.01.26
  2. 2015.01.02

액트 오브 킬링

from 글쓰기 2015. 1. 26. 12:31

이 영화를 본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영화 ‘액트 오브 킬랑’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참여한 당사자들을 모아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특별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의 부조리한 상황을 꼬집었다. 학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저지른 끔찍한 살인과 고문장면을 태연히 재연한다. 심지어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둔기로 사람을 죽이면 피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철사를 사람의 목에 감아 천 명을 살인했던 과거를 재연한 뒤 웃고 춤을 춘다. 반면에 그는 손자가 새끼 오리의 다리를 다치게 하자 이를 타이르는 평범한 노인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절대악보다 더 악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행동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 군은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을 반공분자로 몰아 살해했으며, 피해자는 250만 명이 넘는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군부 정권이 ‘판차실라 청년회’를 앞세워 아직도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판차실라 청년회는 인도네시아의 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여해 연설을 할 정도로 큰 조직이다. 이들은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대외 명분과는 달리 실제로는 시장을 돌며 중국 상인들에게 돈을 빼앗고 불법 도박과 밀수를 서슴지 않는 조직이다.


대학살의 주범인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본 뒤 바지나 머리카락의 색을 바꿔야겠다는 말을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내비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와르가 철사와 자루를 집어 들고 살인 방법을 설명한 뒤 구역질을 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꼈지만, 이들이 만든 영화에서 철사를 목에 감은 피해자가 성직자 옷차림을 한 안와르에게 “천국에 갈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어이없는 연출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미국이 인도네시아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 중 하나라고도 말한다. ‘액트 오브 킬링’은 비단 인도네시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인도네시아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로 봐달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과거가 떠오르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에서 천 번이나 상영되었다. 이로 인해 대학살이 공론화되고 피해자들은 극심한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엔딩 크레딧에 Anonymous라는 자막이 수없이 올라가는 걸 보면 아직 인도네시아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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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글쓰기 2015. 1. 2. 22:13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짧고 깊은 잠을 청했다. 어제도 윗집의 발자국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 탓이다.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어제 인터넷으로 알아본 원룸 입주자가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교와 적당히 가깝고 월세도 저렴하거니와 바로 맞은편에 경찰서가 있어 점찍어둔 집이다. 급한 마음에 끼니도 거른 채 원룸으로 향했다.

우편함에서 방주인이 보관해둔 열쇠를 꺼냈다. 매물로 나온 집은 인터넷을 통해 보던 이미지와 달랐다. 건물 입구를 열쇠로 열고 들어가자마자 회색 시멘트 계단과 복도를 둘러싼 회청색 벽이 보였다. 90년대 유행하던 여관을 개조해 만든 원룸이었다. 문을 열고 방문을 들여다보니 감옥이나 다름없어보였다. 방 크기는 245mm인 내 발을 기준으로 가로 열 걸음, 세로 일곱 걸음 가량이다. 현관 오른쪽에는 성인 여자 한 명이 겨우 샤워를 할 정도로 비좁은 화장실이 보였다. 세탁기나 싱크대는 없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이곳에 살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와 빨래를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었다. 저는 그냥 잠만 자고, 손빨래는 화장실에서 해결했는데요.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탁은 어떻게 하는지 묻자, 그 방은 원래 세탁기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잘라 동파가 되지 않게 세탁기를 설치해줄게. 세탁기는 입주자 본인이 가져와요. 세탁기 사오면 수도비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세탁기 많이 안 돌리면 몇 천원 빼줄 수 있고. 네? 지원해주신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한 달에 두세 번 돌리는 건 괜찮은데, 너무 많이 돌리면 안 되는 거고. 아. 그럼 세탁기 돌릴 때 들어가는 수도세 지원해주시는거에요? 글쎄 내가 거기 옥상에 물탱크 안쪽에다가 세탁기 설치해준다니까.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싱크대는 없나요? 그 방은 원래 없어. 대신 학생한테 인덕션 하나 줄게. 그럼 전기세 많이 나오잖아요. 버너는 안 되나요? 원래 안 되는데, 사고 안 나게 고급형 사오면 허락해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탁기는 설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아보고 연락을 줄게요.

통화를 마친 나는 일어나 방에 한 가운데에 섰다. 사방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시멘트 바닥과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여관 건물이 시야를 가려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 고개를 숙이니 비좁은 골목에 일렬로 놓인 쓰레기통과 폐지 더미가 보였다. 새벽에만 조금 시끄럽다는 세입자의 말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나침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보니 북향이다. 이곳에서 지내려면 화장실을 부엌처럼 쓰고, 버너 폭발 위험을 감수하고 식사를 하면서 냉기를 견뎌야 한다. 방에 짐이 다 들어가지 못할 텐데. 빨래를 못 할 수도 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오래 지내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던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벽간 소음이 없으니 살 만하지 않겠나. 책 하나는 잘 읽히겠네. 경찰서도 가까우니 치안은 확실하고. 스스로 타협을 하는데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집 여자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시멘트 복도를 걸은 뒤 내가 있는 방 앞으로 난 공용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소리였다. 이 방은 복도 끝 계단 통로 바로 앞에 위치해있어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갑자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이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남향 단독 주택. 햇빛 쨍쨍한 날에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이불을 빨아 옥상에 널 수 있는 곳. 가을이면 돗자리에 붉은 고추를 늘어놓고 말릴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책도 잘 읽히고 적당히 들리는 사람 말소리에도 예민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이 어렵겠다는 말을 전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한참이나 스스로의 무능을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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