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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 번째 단편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3 2016.06.12


엄마는 봄이 되면 다양한 나물을 밥상 위에 올렸다. 입춘이 지나면 외가에서 직접 냉이를 캐어와 누런 잎을 떼고 다듬어 살짝 데쳐 무치거나 국을 끓였다.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는 구수하기 그지없었다. 달래는 수염뿌리를 잘라 물로 씻은 뒤 짧게 끊어 간장과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에 넣었고, 우리는 이 양념장에 갓 지은 밥을 비벼 먹었다. 식초와 간장, 고춧가루와 깨소금, 참기름을 넣은 돌나물은 씹는 맛이 좋았다. 고추장에 빨갛게 무친, 쌉싸름한 씀바귀는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좋아하게 된 반찬이다. 통통한 두릅 역시 씹기 불편하여 어릴 때는 꺼린 음식이었다. 지금은 무르지 않게 살짝 삶아낸 두릅을 젓가락에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느껴지는 독특한 향을 좋아한다.

여름이 되면 엄마는 빨간 냉면 양념장을 한가득 만들어두었다.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즉시 칡면을 삶아내 양념장을 부어 삶은 계란을 올린 비빔냉면을 대접하기 위해서다. 혀가 얼얼해지는 냉면의 매운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냉면을 먹으러 우리집을 찾아왔다. 엄마는 유난히 더위를 타는 동생을 위해 얼음을 띄운 냉미역국을 만들어두었다. 새콤한 냉미역국을 들이키면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잊을 수 있었다. 복날이면 국내산 토종닭을 구해와 밤, 인삼, 대추를 넣고 푹 고아 백숙을 만들어 먹였다. 쫄깃한 닭가슴살과 찹쌀을 씹고 육수를 들이키면 속이 든든해졌다.

짭쪼름한 양념이 배인 무를 씹는 식감이 일품인 고등어 조림이 밥상 위에 올라올 때면 가을이다. 입맛이 없을 때면 밥에 물을 말아 칼칼한 고등어 살을 발라내 먹었다. 찰랑거리는 덩어리를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 도토리묵 역시 일품이었다. 손이 큰 엄마는 곱게 간 국내산 도토리 가루를 구해와 물에 풀어 끓인 다음 굳혀 한가득 묵을 만들어 친척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늙은 호박의 속을 파내 은근하게 달큰한 호박죽을 만들었다. 테두리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호박씨는 한 데 모아 말린 뒤 껍질을 까먹는 재미가 있었다.

주방에서 이 모든 음식이 뚝딱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방에서 책을 읽었다. 음식과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고 나는 그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게 효도라고 알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찬이 차려진 밥상 앞에 식구들이 앉으면 자리가 부족했다. 그럴때면 엄마는 주방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양푼에 고추장, 나물, 헌 밥을 넣고 비벼 먹었다. 국은 늘 따뜻했고 밑반찬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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