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북
제목이 야하다구요?
하지만 우리는 숱한 경험을 통해 정작 이러한 책들은 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노란 책등에 검정 글씨로 커다랗게 '섹스북'이라 쓰여 있는 책을 보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책을 읽는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섹스’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책을 공공 도서관이나 지하철에서 읽기를 꺼린 것 같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책 내용은 흔히들 상상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왜 당당하게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상당히 이중적이고,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왔기 때문일겁니다.
이 책은 목차가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나 해서 뒷 페이지를 살펴 보았지만 역시나 목차가 없습니다. 목차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저자 권터 아멘트의 재미있는 변명이 들어있어요. “재미있을 것 같은 부분만 골라서 읽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목차를 만들지 않았지요. 모든 주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이 책은 의미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자위, 섹스, 오르가즘, 피임 모두 중요한 성지식이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실제로 필요한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고 남학생과 여학생을 다른 분반으로 나누어 선생님 앞에서 순결서약을 하거나 배란일 계산법을 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르가즘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콘돔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는 정작 알려주지 않았다. 한참 성에 대해 궁금할 시기에 정작 필요한 성지식을 알려주지 않자 친구들끼리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야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왜곡된 성의식을 키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