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고래'

from 기록 2015. 8. 9. 16:44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고, 올해 초 종로 반디앤루니스 매대에 놓인 걸 우연히 발견한 게 두번째다. 멀뚱히 서서 십여 페이지 남짓을 읽다가 한숨을 쉬었더랬다. 아니,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질투와 경외심이 일 수 밖에 없는 다양한 단어와 흡입력 있는 문장들... 한동안 고래를 잊고 있다가 푹푹 찌는 여름날, 도서관에서 예약해 둔 책을 빌려와 단숨에 읽어버렸다.

 

예스러운 단어와 일필휘지로 썼음직한 문체가 좋았고, 작가가 변사처럼 소설 속에 개입하는 전개 또한 신선했다. “그것은 ~의 법칙이다라는 반복되는 구절 역시 흥미로웠다. 사랑의 법칙, 자본의 법칙, 진화의 법칙, 지식인의 법칙 등 많은 클리셰를 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눙을 치는 작가의 모습이 재미있다. 다만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묘사가 많은 편인데, 지나치다 싶은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소설 읽는 맛을 더해주는 편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핍진성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핍진성은 사실적으로 진실해 보이는 정도나 질을 의미한다.) 소설 속 인물인 걱정의 체중이 1톤이 된다는 둥, 금복의 성별이 바뀐다던지, 코끼리와 춘희의 무언의 대화 같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작가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내가 작가였다면 핍진성이 떨어진다며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소설에 넣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 되게 만드느냐 또한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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