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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

from 글쓰기 2015. 10. 29. 12:41

발터벤야민 선집,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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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노래 한 곡을 써보라.

from 글쓰기 2015. 10. 27. 01:00


당신은 차가운 분홍 같은 사람

, , 입의 경계가 문드러지고

하나의 덩어리로 남았다

멀리서 아득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당신을 위한 문장을 만든다

흰 달이 뜬다니 조심해서 걸어야겠어

나는 오늘도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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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일생에서 기억에 남는 밥상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쓴 글은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 우리 집 밥상머리에서 욕지거리가 오가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글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의 주식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아파트를 팔고 월세가 저렴한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당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와 채 삼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공동주택이었다. 다섯명이 살기에는 너무나 좁았던 그 집에서 나는 아버지의 무수한 욕지거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어느날 아침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나와 여동생, 아버지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화를 냈고, 쌍시옷이 들어가는 말이 떠다녔다. 여동생은 밥숟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피했고 나는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향해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던졌다. 무거운 물건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족 중 누구도 한 번 성이 난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모래가 된 밥을 우물거리며 지옥 같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했던 욕은 악마같은 년, 악랄한 년, 너희들은 저주를 받을거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아버지는 영업을 하고 사람을 상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밉지도, 가엾지도 않다. 하지만 왜 꼭 밥상머리에서 가족들을 향해 이유 없는 욕을 퍼부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압도적인 무언가가 아버지를 눌러서 화가 삐져나온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한동안 밥을 빨리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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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듯이 보였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이어폰의 볼륨을 높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침묵이 사라졌다. “잘 가” “내일 봐요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척 하다가 돌아서서 조용히 그의 뒤를 밟는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빠른 속도로 왼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가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나 역시 조금씩 보폭을 늘인다. 그가 편의점에 들어섰다. 편의점 근처 건물 앞에서 나는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그의 행동을 주시한다. 그의 손에 캔 맥주가 하나 들려있다. 편의점 문을 나서자마자 손에 든 맥주 캔을 딴다. 흘러넘치는 거품을 재빨리 입으로 핥은 뒤 다시 빠른 보폭으로 걷는다.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수사망을 좁히는 형사처럼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오 분쯤 걸었을까,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정류장에 멈춰선 그는 남은 맥주를 모조리 들이킨 뒤 캔을 찌그러뜨린 후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 의자에 올려놓는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을 눈치 챘다. 그는 회사에서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 역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Radiohead'Down is the new up'이 흘러나온다. 그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며 무엇인가를 살핀다. 나는 그를 놓칠세라 버스 정류장 칸막이 뒤에 숨어 빈틈으로 그의 행동을 엿본다. 그는 7로 시작하는 초록 버스를 탔다.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그를 지나쳐 제일 뒷좌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그를 관찰한다. 그는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알록달록한 액정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릴때마다 그의 야윈 어깨도 들썩거렸다. 그가 내릴 정류장을 모르는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의 모습을 쫓기가 힘들어졌다. 순간, 그가 일어나 벨을 눌렀다. 나는 뒷좌석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며 그가 버스에서 내린 다음 그를 따라 내렸다. 거리는 어두워져있었고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오갔다. 그의 보폭은 다시 빨라졌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있었다. 가방을 뒤적이며 담배를 꺼내 문 그는 오른손으로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숨을 쉬고 뱉을 때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터에는 그 말고도 붉은 기운이 도는 머릿결을 지닌 여성과 양복을 입은 사내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흡연 구역으로 보인다. 그는 짧게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과 고가도로 사이에 난 길로 들어섰다.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다.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나는 당신이 듣는 음악이 궁금하다. 편의점을 지나 동네 작은 헤어숍과 복권 가게, 부대찌개 전문점을 지나 한참을 걸은 후에 그가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냉면집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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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 친구 녀석의 아들 돌잔치에 다녀왔다. 사실 녀석이라는 말을 붙일만큼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환히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친구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해 근처 이마트 푸드코트에서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 이마트에 간 이유는 카페에 갈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회사를 그만둔 후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돌잔치가 열리는 곳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창 둘을 만났다. 한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다른 친구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할 말이 없어 조금은 어색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누구와도 어색하게 지내는 것 같다. 사이가 껄끄러워진 친구 Y가 올까봐 걱정했지만 Y는 나타나지 않았다. 축의금을 건네고 밥을 먹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왠일인지 식욕이 내키지 않았다. 얼마 후 또다른 동창 S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나와 친하지 않았던 S.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두 친구들에게 자기네 집으로 놀러오라고 말한다.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잔치가 끝나고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다가 어색한 만남이 끝나버렸다. 동창 K연락해라고 인사했지만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홍대로 향했다. 2년 전 교육원에서 같이 수업을 들은 BY와의 약속이 있어서다. 비교적 한적한 홍대입구역 1번출구 방향으로 나와 조용한 카페로 들어섰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나는 어김없이 좋아하는 선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스스로를 금사빠라고 지칭하자, 친구 B“OO, 제발 좀!” 하고 나를 타박했다. 나는 병신같지만 그가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준 글을 둘에게 보여줬다.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라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다. Y는 그가 쓴 글이 어렵다고 했다. 연락해보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선배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날렸다. 뭐라 답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단문 메시지가 오간 후 그는 나에게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나. YB에게 내 짝사랑 고백을 끝내고 취업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이쪽 계통은 오래 일할 곳을 찾기 힘들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 소설가를 꿈꾸는 B와 나는 문장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셋 다 내향적인 사람이라 대화하기 편했다. 대화가 중간에 끊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고 해야 할까.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카페를 나와 신촌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을 향했다. 선배가 추천해준 책은 없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도 없었다. 최승자의 시집도 없었다. 문학 코너를 돌다가 우연히 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그리스인 조르바를 발견하고 두 권을 샀다. B는 애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을 샀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Y는 클래식 음반을 사려는데 마음에 드는 음반이 없다며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나는 Y에게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속내를 고백했다. 우리의 대화는 끝까지 불안했다. 인생 기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눙을 쳤지만 어떻게 될지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라 더욱 불안하다. 집으로 돌아와 한강의 시집을 단숨에 읽었다. 내 부족한 어휘력을 키우고 싶다. 국어 사전을 사려 한다. 집에 돌아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 들러 소설쓰기 모임 모집 공고를 보았다. 자격 조건은 완결된 소설 작품을 쓴 경험이 있으신 분여기서 걸린다. 내가 합평에 낄 만큼 소설을 쓸 자격이 있는걸까 생각해본다.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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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白紙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지인들 말로는 내가 금사빠라고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주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 두 번째 남자친구가 그랬고, 현재 내 짝사랑 상대가 그렇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이 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느냐 하면, 일단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멀티태스킹과 거리가 먼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을 깊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에 빠지면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을 그만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철새처럼 직장을 옮겨다니다보니 통장에 잔고가 넉넉할 리 없다. 씀씀이가 크지 않은 편이라 돈을 버는 일에도 소홀한 듯하다. 친구들의 경조사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진다. 크지 않은 씀씀이는 어쩌면 버는 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설사 전업 작가가 된다 해도 통장의 잔고는 여유가 없는 날이 많을 테다. 회사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동생과 쇼핑을 하며 돈을 많이 썼던 날이 있다.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 동생이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을 썼다. “언니 통장이 놀랐겠네.” “?” “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써서.”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엄마는 1961년생, 아버지는 1955년생이다. 환갑을 넘긴 아버지는 눈매의 살이 쳐져 눈을 덮어 우는 상이 되었다. 엄마는 눈을 치켜뜰 때마다 이마에 주름이 패인다.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도 두렵지만 내가 의지할 곳이 사라진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아직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나보다.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날을 상상한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능력이 있으니 그런대로 잘 살겠지만 나는 집도 없이 혼자 버려져서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명을 이어가겠지.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올해만 들어 직장을 세 군데나 다녔다. 지금은 무직상태. 자진 퇴사한 곳은 한 군데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권고사직이다. 그나마 그 한 곳도 반 강제로 그만둔 곳이나 다름없다. 일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절반은 내 병 때문이기도 하다. 상사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다보니 정상적으로 근무하기가 힘들어졌다. 한 군데에서는 카카오톡 메세지로 퇴사를 통보했고,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면담을 통해 해고를 통보받았다. 인생에서 실패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역시 씁쓸한 일이다.

 

-백지

이건 사실 부끄러운 고백인데, 언제부터인가 백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내 글은 솔직하지만 세련되지 못하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다독과 다상량. 나는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 백지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에 나온 주제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중이다.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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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videotape’을 듣고.

 

멀지 않은 과거에 비디오테이프라는 게 있었다. 주로 영화를 볼 때 비디오 플레이어에 이 물건을 집어넣어 재생시켰고, 비디오 플레이어에 녹화 기능이 있어 내가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녹화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가정용 비디오테이프의 크기는 가로 18.7cm, 세로 10.3cm, 높이 2.5cm이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마음이 앞선 십대들은 누구나 한번쯤 부모님 몰래 야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보다가 테이프 부분이 플레이어에 씹혀서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내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지 궁금한 영화 타이타닉을 부모님 몰래 보다가 테이프가 플레이어에 걸린 것. 나는 이 일로 몇 차례나 동생을 놀렸던 기억이 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지만 90년대 초반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매체가 TV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원하는 영상을 보려고 하면 녹화를 떠 둔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재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돌잔치, 입학식, 졸업식과 같은 행사 날에는 8mm 홈비디오 캠코더로 영상을 찍어 비디오테이프로 간직했다. ,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추억 하나 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가수가 TV에 나오면 재빨리 쓰지 않는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삽입한 뒤 녹화 버튼을 누르던 게 생각난다. 그런 식으로 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 녹화해 한 시간짜리 긴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 통학하던 버스에서는 중앙에 TV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돌 가수의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와서 서로 자기 것을 틀어달라고 경쟁하곤 했다.


그랬던 비디오테이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아마도 인터넷이 대중화된 무렵부터인 듯하다. 집에 있던 비디오 플레이어는 부모님이 이사를 하면서 버린 것 같고, 내 유치원 시절이 찍힌 비디오테이프도 보이질 않는다. 풀지 않은 이삿짐 어딘가에 쑤셔 박혀 있을테지만 유년기의 추억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다. 포스트잇처럼 쉽게 찍고 쉽게 지울 수 있는 지금의 영상들도 분명 장점이 있지만, 한 번 찍으면 테이프가 늘어져 닳을 때까지 돌려보던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추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 요즘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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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하고 있는 이의 가족들과 상견례하는 꿈을 꾸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더니 나도 어지간히 그를 좋아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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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10. 15. 15:50

회사를 그만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의지로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거다. 낌새는 며칠 전부터 느껴졌다. 사장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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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구 P를 만나고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왔다. 집에 오니 아빠가 왜 연락이 되지 않았냐고 타박하셨다. 휴대폰 배터리가 꺼진 사이에 사장이 내게 연락을 했고, 통화가 되지 않자 사장이 우리 집에 전화를 건 것이다. 아빠가 전화를 받았단다.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고 전원을 켜는데 이거 혹시 월요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이 아닌가 싶어 긴장했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인터뷰 기사를 월요일 오전까지 작성하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다행이다.

오늘 P에게 회사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와 좋아하는 선배 이야기를 했다. P 말로는 내가 나를 까고있다고 한다. 선배 이야기를 듣더니 나더러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설사 사귀게 된다 하더라도 힘들게 뻔히 보이는 연애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을 접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맞는 말인데,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서점에서 심리학 책 두 권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문학을 잘 읽지 않게 된다. 요즘 심리학과 철학 관련 도서를 읽는다.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책을 읽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선배가 내게 보여준 글과 내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어제 취재를 나가는데 취재 나가기 싫지?”라고 두 번이나 내게 물었다. 여동생이 최대한 이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의지를 어필하라고 한 조언을 생각하여 왜 그러세요.”라고 정색했는데 또 묻는다. 다시 왜 그러세요를 말하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선배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된다. 언제부터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더니 내 인생이 그대로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이렇게 불안하다가도 오늘 읽은 심리학책에서 인생의 1순위가 일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문장을 보고 위안을 삼는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내가 백수로 지낼 때를 떠올려본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권태로운 나날들이었다. 심지어 책도 잘 안 읽혔다. 진짜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서점이나 독서실에서 홀로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쓰기보다 읽기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읽기를 소홀히 해서 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은가? 사실 소설가보다는 평론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지 못하다보니 차라리 창작이 낫겠거니 생각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꿈을 정한 거다. 소설가가 되려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 병에 대한 것 이외에는 아직까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바가 없다. 내 주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진짜 꿈을 가진 사람은 이미 행동을 하고 있다던데 나는 일기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써둔 글도 없고 글재주도 신통치 않은 편에 속한다. 내게 어울리는 옷은 무엇일까. 일단 많이 읽고 쓰다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올해 남은 시간을 다독과 다작에 바치려 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내 인생 경험은 나름대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경험들을 풀어낼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깜냥을 늘리기 위해 뭐가 됐든 써보자


* 며칠 전 교육원에서 알게 된 C에게 내 병을 털어놓았다. C도 자기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C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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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7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10. 8. 00:04
회사 선배가 내게 취재가 좋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고만 말했는데 집요하게 물어보길래 솔직히 인터뷰 할 때 긴장이 되어 힘들다고 말했다. 뭐가 하고 싶느냐는 질문도 했던 것 같다. 편집자 이야기를 꺼냈는데 쉽지 않다, 솔직하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더니 소설가? 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럼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했던 것 같다. 내게 써둔 글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없다고 답했다. 사실 짧게 쓴 게 있는데 삭제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쪽팔려서 아무말도 못했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쓰다보면 에세이가 된다고 겨우 말했던 것 같다. 에세이도 잘 못쓰는 주제에. 선배는 돈받고 자기가 쓴 글을 넘기는 곳이 있다고 했다. 내가 궁금해했더니 가방을 뒤적인 후 본인이 쓴 글이라며 접힌 종이 하나를 넘겨줬다. 선배가 담배를 태우고 올 동안 글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글도 훌륭했지만 실패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하고 자기의 주관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 뒤 대단하시다고 칭찬해드렸다. 선배는 뭐가 대단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게 선배가 야근하면서 쓴 글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허영 부리느라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하며 노력조차 안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치부를 들킨 느낌이었다. 나는 병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병 이야기는 결국 꺼내지 않았다. 선배는 똑똑한 사람이니 내 얕은 생각과 행동을 간파했을 것이다.
오늘 여동생을 만나, 회사 선배가 취재가 좋냐며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말하니 최대한 그만두려는 티를 내지 말라고 했다. 거짓말을 못하는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차라리 동정심을 유발하며 절박하게 다니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라는데... 내가 또 실수했나보다.
동생과 엄마가 누누히 하는 말, 솔직하게 모든 걸 오픈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선배에게 속내를 들킨 기분이다. 그가 쓴 글에서 충격을 많이 받아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나는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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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5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10. 5. 07:51

이 글을 쓰는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그만두네 마네 하면서도 여태껏 다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감정보다 인간적인 유대감 비슷한 그런 감정이 든다.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내가 회사 그만둬도 알고 지내고 싶다, 친하게 지내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만두지 말고 짤릴 때까지 걍 다녀, 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제밤에 여동생과 부대찌개를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커피 때문인지 잠이 안와서 밤을 홀딱 새버렸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회사 생각이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부터 부장님이 병가다. 당분간 사장이 나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텐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바보같이 또 긴장해서 지시 사항을 놓칠까봐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다. (좋아하는 선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느낀 점인데 확실히 병에 걸린 후부터 머리가 예전만큼 팽팽 돌아가질 않는다. 책을 읽어도 수박 겉핥는 기분... 예전에는 책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정류장을 놓칠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는데, 몇 년 사이에 책읽기가 어려워졌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순발력이 떨어졌고. P사에 다닌 이후 확실히 내가 변하긴 변했다. (이 점을 친구 지혜가 지적해주기도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주변이 사라지고 자기 표현이 줄었다. 회사 선배가 날더러 농담으로 우울증(환자)이라고 불렀는데 발끈해버렸다. 날더러 정색한다고 중얼거리더라. 그 사람은 실제로 내가 아침마다 항우울제를 먹는 환자라는 걸 모를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상위그룹에 속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인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따라가지 못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저 허허 웃곤 한다. 내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났는지 모르겠다. 취미로 수학 문제를 풀다보면 머리가 좋아질까? 남은 몇 십년을 이렇게 둔한 머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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