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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88. 항상 당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 다섯 가지 2015.10.23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白紙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지인들 말로는 내가 금사빠라고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주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 두 번째 남자친구가 그랬고, 현재 내 짝사랑 상대가 그렇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이 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느냐 하면, 일단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멀티태스킹과 거리가 먼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을 깊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에 빠지면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을 그만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철새처럼 직장을 옮겨다니다보니 통장에 잔고가 넉넉할 리 없다. 씀씀이가 크지 않은 편이라 돈을 버는 일에도 소홀한 듯하다. 친구들의 경조사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진다. 크지 않은 씀씀이는 어쩌면 버는 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설사 전업 작가가 된다 해도 통장의 잔고는 여유가 없는 날이 많을 테다. 회사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동생과 쇼핑을 하며 돈을 많이 썼던 날이 있다.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 동생이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을 썼다. “언니 통장이 놀랐겠네.” “?” “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써서.”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엄마는 1961년생, 아버지는 1955년생이다. 환갑을 넘긴 아버지는 눈매의 살이 쳐져 눈을 덮어 우는 상이 되었다. 엄마는 눈을 치켜뜰 때마다 이마에 주름이 패인다.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도 두렵지만 내가 의지할 곳이 사라진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아직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나보다.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날을 상상한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능력이 있으니 그런대로 잘 살겠지만 나는 집도 없이 혼자 버려져서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명을 이어가겠지.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올해만 들어 직장을 세 군데나 다녔다. 지금은 무직상태. 자진 퇴사한 곳은 한 군데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권고사직이다. 그나마 그 한 곳도 반 강제로 그만둔 곳이나 다름없다. 일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절반은 내 병 때문이기도 하다. 상사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다보니 정상적으로 근무하기가 힘들어졌다. 한 군데에서는 카카오톡 메세지로 퇴사를 통보했고,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면담을 통해 해고를 통보받았다. 인생에서 실패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역시 씁쓸한 일이다.

 

-백지

이건 사실 부끄러운 고백인데, 언제부터인가 백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내 글은 솔직하지만 세련되지 못하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다독과 다상량. 나는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 백지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에 나온 주제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중이다.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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