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로 만든 집

from 기록 2014. 11. 8. 15:33
자폐아인 여자 주인공을 보며 내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어두컴컴한 책상 아래에 앉아 백과사전을 읽거나 벽면에 걸린 액자의 한 귀퉁이나 벽지 무늬를 골똘히 바라보며 생각에 빠지곤 하던 습관들. 특정 낱말을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 낯섦을 즐겼다. 한 가지에 골몰하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놀았던 것 같다. 엄마의 화장대 위에 놓인 병들을 찬찬히 훑어보거나 안방 침대에 누워 커텐을 고정시키기 위한 몰딩의 수평이 어긋나지 않았는지 살펴보던 일,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벽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하던 날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경미한 자폐를 앓지 않았나 싶다. 그 나이에 친구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주인공은 죽은 아버지가 달에 있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부터 카드를 쌓아 자기 몸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만한 작은 성을 쌓는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병을 버리지 못한 나는 지금의 나는 책과 허술한 생각으로 나만의 성을 쌓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세상으로 빠져나와야할텐데. (2014/10/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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