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

from 기록 2017. 4. 24. 17:36



4월 22일 저녁부터 낀 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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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드레스 투어

from 기록 2017. 4. 20. 19:17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줄임말)를 원*에서 하기로 결정한 뒤 원*에서 추천해준 웨딩드레스 샵 가운데 두 군데를 골라서 드레스 투어라는 것을 해보았다. 한마디로 본식 때 입을 드레스 종류를 고르러 가는 것. 한 샵당 드레스 네 벌을 입어보았다. 원*에서 말하길, 드레스 투어 시 한 샵당 피팅비 3만원이 발생한다고. 예비 신부에게 드레스를 입혀줄 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인 듯 하다. 내가 들른 두 샵 모두 촬영은 금지였다. 내가 아직 샵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촬영을 할 수 없다는데,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웨딩드레스 스케치 도안이라는 것을 출력해 갖고 가서 남자친구에게 드레스의 특징과 문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림 못 그린다고 해놓고 의외로 꼼꼼하게 웨딩드레스의 특징을 기록해놓은 남자친구의 스케치 솜씨. 첫번째 들른 샵에서 세번째로 입은 미카도 실크 소재 드레스가 내 이미지와 어울려 마음에 들었지만 엄마는 과체중인 내 몸매가 도드라져보인다며 제일 처음 입은 드레스를 추천하셨다. 남자친구도 첫번째로 입은 드레스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하길래 그걸로 예약했다. 내가 선택한 샵인 *이미브라이드 원장님 말로는 목이 짧고 어깨가 좁은 내 체형에는 하트넥, 오프숄더, 그리고 내 입술보다 작은 문양이 들어있는 디자인의 드레스가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 두번째 들른 샵에서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명확히 이야기했는데, 네 벌 중 마음에 드는 드레스는 단 하나 뿐이었다. 작은 비즈가 촘촘히 박혀있는 세미 머메이드 디자인의 원피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드레스들은 문양이 지나치게 크고 디자인이 촌스러워보였다. 드레스 투어를 하며 느낀 점은 아무리 예뻐보이는 드레스라 하더라도 내 체형을 고려하여 직접 입어보아야 나에게 어울리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드레스 투어를 마치고 배가 고파 압구정 로데오역 근처 아무데나 눈에 보이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밥값만 비싸고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놀랐다. 식사 자리에서 엄마는 남자친구에게 소개팅을 극구 사양하는 딸한테 사람 만나는 연습도 해볼 겸 소개팅에 나가보라고 했는데, 머리숱도 얼마 없다고 하고 키도 주선자로부터 들은 것 보다 작고 강남에 집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주선자인 (남자친구의) 이모님께 한마디 했다. (남자친구의) 이모님이 중간에서 마음 고생을 하셨을거다. 이제는 둘만 행복하게만 살면 된다. 우리 딸이 나이만 먹었지 할 줄 아는 게 없다. 우리는 살면서 남들보다 굴곡이 많았지만 남편과 나는 오로지 자녀들의 교육에만 전념했다, 자네가 우리딸을 위한 총알받이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다. 엄마가 지나치게 우리네 입장에서만 말씀을 하신 것 같아 남자친구한테 미안했다. 나는 엄마의 욕심이 부끄럽고 피곤하여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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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벚꽃구경

from 기록 2017. 4. 14. 10:27


대방역에 내려서 여의도로 향하는 길에 이렇게 양쪽으로 벚꽃이 핀 길이 있다. 사진 왼쪽은 한강공원. 벚꽃의 절정이 조금 지난 날 찍은 사진이다. 데이트는 언제나 즐겁고,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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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8일, 강릉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열려 부케를 받으러 갔다. 지인이 부케를 두 번 던졌는데 두 번 다 부케를 한번에 받아서 뿌듯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강릉에 있는 카페거리(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를 거닐다가 삼척솔비치 호텔로 향했다. 우리 커플의 100일이 4월10일이기 때문. 100일 기념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남자친구가 맨 아래 사진처럼 해변이 보이는 방을 예약해두어서 상쾌한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 횟집이 모여있는 어시장에서 횟감을 사와 술을 마셨다. 저녁에는 호텔 주변을 돌며 산책을 했다. 윗쪽의 사진처럼 건물의 야경이 무척이나 멋졌다. 다음날 화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엄마는 내가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는 줄 아셨나보다. 나는 엄마에게 남자친구와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한줄 알았는데 아니었단다.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아빠가 난리가 나셨다며 싸늘한 목소리로 나를 혼냈다. 어린 애도 아니고 삼십대 중반을 향하는 내가 결혼 앞둔 남자친구와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온 게 무슨 잘못인지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결국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남자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속이 울컥했다. 여행을 엄마 때문에 망친 기분이다.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남자친구의 누님네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남자친구도, 남자친구의 누님네 부부도, 남자친구 누님네 아들도 모두 대화를 즐기는 것 같았다. 나만 말이 없었다. 이 가족의 화목함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돈 때문이다. 이날 나는 불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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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뷔페

from 기록 2017. 4. 1. 20:44


지인들과 인당 거금 4만5천원을 들여 딸기부페를 다녀왔다. 장소는 서울 삼성역 근처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역시나 예상대로 딸기 디저트가 너무 달아 많이 먹을 수 없다. 딸기뷔페에 왜 우동이 있는지 의아했는데 먹다보니 이해가 되더라. 먹다보면 너무 달아서 얼큰한 게 먹고 싶어진다. 한 번쯤은 가볼 만하지만 두 번 가기에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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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from 기록 2017. 3. 28. 09:06

이 될 곳에 다녀왔다. 어머님, 아버님 모두 인상이 좋으셨다. 나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반겨주시는 모습을 보니 드디어 나도 이집 식구가 되는구나 싶었다. 어머님이 나와 예비 형님에게 목걸이를 선물해주셨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부엉이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목걸이도 고맙지만 나를 위해 목걸이를 고르셨을 정성을 생각하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친구가 자란 집에서 1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예비 형님의 차를 타고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내가 워낙 낯을 가리고 말주변이 없어서 주로 예비 시부모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다. 아버님은 말씀하실 때 사투리가 심해서 남자친구가 옆에서 번역을 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예비 형님네 집으로 이동해서 디저트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색함이 조금이나마 풀렸는지 물어보시는 말에 대답도 하고 호응도 할 수 있었다. 거창까지 왕복 7시간이 걸렸지만 예비 시어른들이 모두 잘 대해주셔서 기분 좋게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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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16personalities.com/ko



INFP형 사람은 최악의 상황이나 악한 사람에게서도 좋은 면만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진정한 이상주의자입니다. 간혹 침착하고 내성적이며 심지어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처럼 비쳐지기도 하지만, 이들 안에는 불만 지피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열정의 불꽃이 숨어있습니다. 인구의 대략 4%를 차지하는 이들은 간혹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일단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이들 안에 내재한 충만한 즐거움과 넘치는 영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교형(NF) 사람들과 비슷한 성격적 자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은 논리(분석형)나 인생이 주는 흥미로움(탐험가형), 혹은 인생의 실용적(관리자형)인 부분이 아닌 그들 나름의 원리원칙에 근거하여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더욱이 성취에 따르는 보상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불이익 여부에 상관없이 순수한 의도로 인생의 아름다움이나 명예 그리고 도덕적 양심과 미덕을 좇으며 나름의 인생을 설계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본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지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의 생각 뒤에 숨은 동기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는데, 이는 자칫 이들을 외톨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금이라고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헤매고 다니는 자가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오래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으며, 깊게 뻗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않습니다.”

J. R. R. 톨킨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INFP형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적절한 은유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상징화하여 다른 이들과 깊이 있는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직관적인 성향은 이들로 하여금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게 합니다. 이를 비춰보면 여러 유명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배우가 이 성격 유형에 속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습니다. INFP형 사람에게 있어 본인 자신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들은 종종 작품에 자신을 투영시켜 세상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자기표현에 특출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이 유형의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은유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작품 속 허구 인물을 등장시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또한 뛰어난 언어적 소질을 보이는데 이는 대부분의 외교형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재능으로, 비단 모국어뿐 아니라 제2외국어(심지어는 제3외국어까지!)를 습득하는 데에까지 재능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외교형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이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사람들 간의 화합을 도모하며, 그들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보이는 깊은 관심

이들의 사촌격 성격 유형이 가지는 외향적 성격과 달리, INFP형에 속하는 사람은 소수의 몇몇, 그리고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한 가지 목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등 한 번에 많은 일을 달성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모든 사회악을 근절하는 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이들의 에너지는 빛을 잃고 좌절감을 맛보거나 처한 상황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밝은 장밋빛 미래를 함께 꿈꾸며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INFP형 사람은 선(善)을 위해 하던 행위를 갑자기 멈추거나 하루하루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조차 등한시할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종종 깊은 생각의 나락으로 자신을 내몰아 학문적 가설 혹은 철학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지켜보지 않으면 이들은 연락을 끊고 '은둔자'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추후 이들을 현실 밖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까지 주위 사람의 많은 에너지와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다행인 것은 깊은 나락에 빠져 있던 이들도 봄이 오면 다시금 봉오리를 피우는 꽃과 같이 이들의 애정 어린 마음과 창의적인 생각, 이타주의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생각 역시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뿐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뿌듯함에 미소 짓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사실적 논리나 현실적인 유용성의 관점이 아닌 넘치는 영감과 인간애, 친절함,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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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의 누님, 그러니까 내가 곧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 분의 집에 다녀왔다. 남자친구의 사촌 동생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셋이 보기로 했었는데, 누님께서 나를 보고 싶다 하셔서 나, 남자친구, 누님, 누님의 남편, 남자친구의 사촌 동생 둘 이렇게 여섯명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 정확히는 대화를 나누었다기보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말을 듣는 편이었다. 누님의 남편 되시는 분은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분 같았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누님은 솔직하면서도 배려심이 많은 분이셨다. 남자친구의 사촌 여동생은 계속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나만 뻣뻣하게 굳은 채 조용히 있었는데 나중에는 긴장이 풀려 조용히 웃고 분위기에 어우러질 수 있었다. 남자친구네 집안이 화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내가 이들과 혈연지간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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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날짜가 잡혔다.

from 기록 2017. 3. 9. 13:01

9월 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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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을 탈퇴했다.

from 기록 2017. 2. 6. 17:54

책도 안읽고 연애에 빠져있어서인지 도저히 글이 안써지길래 글쓰기 모임을 탈퇴했다. 좋은 분들이 많아 탈퇴를 하지 말까 고민했지만 더 붙잡고 있는 건 내 욕심인 것 같아 탈퇴를 결심했다. 글을 쓰고 합평을 받으며 나도 몰랐던 내 부족한 부분을 들켜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다들 진지하게 합평에 임해주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직접 쓰기에 나선 이들과 함께한, 일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 뿐이다.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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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from 기록 2017. 1. 31. 17:53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외가 식구들이 난리가 났다. 결혼은 언제 할거냐부터 시작해서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말이 이어졌다. 심지어 외할머니는 내 남자친구를 '네 신랑'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셨다. 혼기가 찬 남자친구도 이번 명절 때 본가에 내려갔다가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곳에 고백했듯이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하지만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일을 오래 쉰 탓도 있고 내가 하는 일의 급여가 적은 편이라 모아놓은 돈이 대한민국 여성들의 평균적인 결혼 자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내 비밀을 아직 남자친구에게 공개하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결혼 이야기가 나오니까 남자친구에게 비밀을 알리기가 두렵다. 친구는 빨리 말할수록 서로에게 좋다고 말하는데 나는 헤어짐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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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면서

from 기록 2017. 1. 10. 20:19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남자친구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MBTI 유형을 묻자, 남자친구는 자신을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맛집 찾아다니기를 좋아하고 수많은 모임에 참석하며 카톡 프로필에 자신의 자동차 배경화면과 좌우명처럼 'Carpe Diem' 이라는 문구를 넣은 사람. 사귄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성과급을 캡쳐해 나에게 보여주었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한 말이 많은 사람. 현실주의자. 이런 남자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너무나 상반된 연인이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엄마와 여동생이 현실주의자고 나는 이상주의자라 대화가 힘들다는 말을 하자, 그는 자신도 현실주의자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허공에 떠 있는 내 다리를 붙잡아줄 오빠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남자친구의 무한한 긍정에 끌렸다. 그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종류의 따뜻함과 여유 그리고 낙천적인 기질의 소유자다.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지내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나를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웃을 뿐이다. 솔직히 추상적인 대화는 어렵다.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세상에 심각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대책없는 낙천성에 나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집안에만, 남자친구는 밖으로만 겉도는 건 아닐까. 연애를 시작한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또 거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업무를 소홀히 하며 하루종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친구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단순함이 부럽고도 신기하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보며 우리의 연애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친구에게는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놓았다.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 불안하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남자친구의 기운을 받은 덕분인지 그새 성격이 긍정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어 그동안 만남에 소홀했던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나에게 닥친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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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을 했다.

from 기록 2016. 12. 15. 17:36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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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마음

from 기록 2016. 12. 11. 18:39

동생과 종각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내 앞에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앉아 있었다. 딸, 엄마, 아들인 것 같았다. 남자는 약간 모자라 보였다. 딸의 손을 꼭 붙든 채 딸과 맞잡은 손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쓰다듬었다. 마치 자신을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딸은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가족이 나들이라도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이제 일어나자”라고 말하더니 모녀가 내 앞으로 비켜 나갔다. 혼자 남은 남자는 갑자기 내 손을 불쑥 잡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자리를 옮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남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아까 본대로 나와 맞잡은 손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동생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서 난처하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남자로부터 손을 빼자, 남자는 이번에는 여동생의 손을 움켜잡았다. 나는 그 손을 빼서 남자의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내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 놀란 아주머니는 남자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부터 떼어놓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의 남자는 눈망울이 무척 맑았다. 나는 최대한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손을 잡아주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괜찮습니다”라고 말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동생의 옆에 자리가 생겨서 앉아 상황을 모면했다. 남자는 여자들에게만 다가가 손을 잡았다. 남자가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모피를 입은 또 다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잡자, “어머”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는 자기 앞에 서 있던 아저씨에게 “아저씨, 제쪽으로 와서 서주세요”라고 말했다. 남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일거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내게 손을 뻗었지만 나는 손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와 동생은 말없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주고받았다. 내가 남자를 처음 본 지 20분쯤 지났을 때야 남자는 전철에서 내렸다.

남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연민, 무시, 회피, 동정.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를 대했어야 했을까. 왜 나는 앞의 모녀들처럼 그의 손을 꼭 잡아주지 못했는가. 솔직히 남자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다른 전철칸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런 죄책감을 동생에게 털어놓자, 동생은 남자에게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래’라고 답하며 이상한 남자 때문에 긴장해서 어깨와 등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으로 와서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약자끼리 연대를 해야 한다는 식의 글을 써 놓고는 장애인을 불편하게 생각한 내 이중적인 마음 때문이다. 왜 나는 끝까지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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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from 기록 2016. 11.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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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다녀왔다.

from 기록 2016. 11. 6. 01:47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다.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된 분과 함께였다. 집회는 처음인데다가 살수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떨었는데, 다행히도 질서를 지킨 사람들 덕분에 별 탈 없이 집에 도착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촛불시위 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에도 조용히 있던 내가 오늘 처음으로 집회에 나섰다. 집에만 있기가 부끄러워서다.

오늘 광화문에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광화문 일대가 함성으로 가득찼다. 행진은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종로와 종각 일대를 지나 을지로로, 시청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로 돌아왔다. 평화적인 시위였기에 겁먹지 않고 행진에 참여할 수 있었다.

행진하는 무리 중에는 대학생, 직장인, 아이를 데리고 나온 평범한 부부들이 보였다. 특히 교복을 입고 나온, 앳되어 보이는 중학생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 나이 때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냈으며 내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상이 정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회사의 사탕발림에 속아 스스로를 노예처럼 생각하던 그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받았던 상처들, 새벽까지 열심히 일해도 채 15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아 학자금을 갚기 위해 허덕이던 날들, 상사로부터 성적인 농담을 들어도 인턴이라는 신분 때문에 하소연할 수 없었던 일 등등. 사회 구조가 불합리하다 느끼지만 각자도생이라는 말에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유범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소통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 내가 처음으로 광화문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유범상 교수님 덕분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약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이자 공격은 연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오늘, 국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거대 권력 앞에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가담한 수장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다. 같이 슬퍼하고 같이 분노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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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를 보고

from 기록 2016. 10. 25. 10:00



잠이 오지 않던 오늘 새벽, Jtbc의 뉴스를 보았다. 최순실의 PC 파일을 입수했다는 기사였다. 내용은 이 시간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전, 최순실이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받았다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한 나라의 수장이 동네 아주머니의 첨삭을 받은 글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읊은 셈이다. 이는 누군가의 말처럼 봉건시대에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최순실 대통령, 박근혜 대변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나. 나라가 비선실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노고로 힘들게 닦아놓은 민주주의라는 길이 한 여자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원칙을 따져 잘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떠나는 민심을 조금이나마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통령직을 내놓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설문 만드는 방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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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병원 방문

from 기록 2016. 10. 8. 09:41

의사 선생님께 잠이 늘고 꿈을 많이 꾼다고 했더니 꿈은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기억나는 꿈이 있냐고 물으셔서 국감 관련되어 생전 처음보는 친구의 언니가 꿈에 나오고 이성이 나를 좋아해주는 꿈을 꾸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요즘의 나는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의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의사가 이성을 만나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나는 병 때문에 자신이 없고 병이 유전된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살이 쪘다.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병이 유전될 확률은 10에서 20퍼센트 사이이고 몸은 운동을 통해서 만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어제 병에 대한 정확하지도 않은 글을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읽은 것 같다. 아 참 그리고 의사가 나는 병 중에서도 증세가 약한 쪽이니 완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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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하면

from 기록 2016. 10. 3. 19:31

멜랑콜리아. 노래 한 곡 듣고 가시죠.

https://youtu.be/Ty80gJfK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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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다녀왔다.

from 기록 2016. 9. 29. 20:23

국감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방문증을 받고 회의실로 올라가는 데 30분이 소요되었다. 방문증을 받으려면 국회 건물 후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고, 취재증을 받지 않은 채 회의실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국회 건물은 또 왜 이리 넓은지 가뜩이나 길치인 내게 원하는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감 시작 30분이 지나 회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취재진과 참관인으로 붐비는 상태. 첫 국감 취재이기에 눈치만 보다가 사진 찍을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다른 기자에게 "이쪽으로 지나다니면 안된다"는 말도 들었다. 

여당 측 의원은 한 명만 참석한 채로 국감이 진행되었다. 여러 질문들이 오가는 사이 누군가는 진땀을 흘리고 누군가는 변명을 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는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당사자가 된 것처럼 긴장이 되어 뻣뻣하게 서 있었다. 이처럼 분위기가 감정적으로 흐르는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리고 당연하게도) 구체적인 수치와 팩트를 위주로 질문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며 토론의 기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대방이 논점을 흐리더라도 이에 호도되지 않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자세.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를 대변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세. 속사정이야 어찌됐든, 의원들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 전경들, 힘들어보이던 회의실의 속기사들, 한 장이라도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경쟁하듯 촬영하는 기자들, 국회의원 곁에서 귀엣말을 하는 보좌진들, 국회 건물 옆에 주차된 방송국 차량들, 추가 발언권을 얻기 위해 1분만을 외치던 의원들, 진땀 흘리던 이사장들 모두 기억에 남는다. 

서른 살 넘어 겪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사와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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