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from 기록 2014. 11. 8. 15:44

봉사활동을 했다. 학점 취득이나 입사 지원 시 가산점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생애 첫 봉사다. 서울시 동대문구 유적지(흥천사-정릉-의릉-영휘원-숭인원) 탐방 참가자들을 인솔 업무를 맡았다. 쾌청한 일요일 오전에 방문한 왕릉과 사찰이 얼마나 고즈넉했는지를 적고 싶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조직과 일에 대한 이야기다.

봉사자는 나와 안내원 둘 뿐이었다. 내가 할 일은 인원파악이었다.  40대 후반의 여자 안내원이 먼저 나서서 관광버스 인원을 확인해주자, 나는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무척이나 꼼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첫 번째 유적지에서 일어났다. 탐방 후 집결지에서 인원을 점검하는데 관광객 네댓 명이 보이지 않았다. 인솔자인 내가 사찰 감상에 빠져 느긋하게 굴었던 게 화근이었다. 안내원은 뒤쳐진 참가자들을 후방에서 챙기지 않은 나를 탓했고, 나는 앞에서 인솔하라고 지시해놓고서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 채 나를 책망하는 안내원에게 화가 났다. “선생님이 앞에서 인원 챙기라고 말씀하셨어요. 바쁘셔서 기억을 못하셨나봅니다.” 나름대로 뼈있는 말을 던졌지만, 안내원은 내게 인원을 제대로 확인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사라진 이들을 찾기 위해 집결지와 관광지를 바삐 오가며 치솟는 짜증을 눌러야만 했다. 알고 보니 사라진 관광객들은 우회로를 통해 집결지로 모이는 중이라 눈에 띄지 않았던 것. 여자저차 일이 해결되고 버스에 올라 명상을 하며 불편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애초에 스스로가 인솔자 역할에 충실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안내원으로부터 느낀 답답한 감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유적지에서부터 강박적으로 관광객들의 머릿수를 내게 묻고, 본인이 인원을 직접 세어본 후 마지막으로 다시 내게 인원수를 보고받는 완고한 태도 때문이기도 했다.  

왜 협업자인 나를 믿지 못하나. 왜 본인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하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안내원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모 식품회사에서 매출, 매입 자료를 만들던 나. 정규직원들의 이유 없는 화풀이 대상이 된 계약직의 나. 그래서 소속 부서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던 자존심 강한 나. 영업사원들의 거짓말에 속아 자료 신뢰도가 엉망이 된 이후 데이터만을 믿던 나.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료의 정확성에 집착하던 나.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다 큰 그림을 놓치고 숫자의 숲에서 헤매던 나. (결국 정규직원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계약 직원에게 정규직원이 될 거라는 희망고문을 하던 사측의 비열한 모습은 언젠가 따로 적어 둘 기회가 있겠다.)

조직이 개인에게 책임과 권한을 달리 부여하는 이유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다. 혼자 모든 일을 맡는 행동은 바보같은 짓이다. 개인이 사라져도 조직은 굴러간다. 당연한 명제를 몰라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던 내가 떠올랐고, 안내원을 보니 그저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심지어 프리랜서라도 마찬가지. 최대한 팀원이 없는 일자리를 알아보던 내 행동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2013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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