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특정 낱말이 맴돌 때가 있다. 가끔은 의미조차 모르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궁금증이 생기면 어떻게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구글에 키워드를 입력하니 한 블로그에 내가 찾던 단어가 보였다. 낯익은 화면이다. 내가 2006년에 운영하던 블로그다. 일기와 방명록만 남아있다. 블로그를 정리하며 작성한 글들을 비공개로 바꾸거나 삭제한 기억이 난다.
2005년, 나는 설치형 블로그 소프트웨어인 태터툴즈를 개인 웹 계정에 설치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수능에 실패한 뒤 최초 입학한 대학에 재입학을 한 후 친구들과 학년이 달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다.
2006년 태터툴즈가 다음과 제휴하여 Tistory라는 블로그 서비스를 선보였고, 나는 자기 검열을 통과한 글만 티스토리에 옮겨두었다. 2006년 이후부터는 어려워지는 전공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힘들어 글 쓸 여력이 부족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 악성 댓글에 대한 걱정, 온라인에서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 내가 글쓰기를 멈춘 이유다. 글을 삭제하거나 숨긴 이유는 다시 읽기 부끄러워서다. 글에는 어떻게든 쓰는 이의 욕망이나 성품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쓴 글을 시간이 지나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얕은 지식을 깊이 아는 것처럼 과장하거나,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최대한 포장하여 과시한 흔적이 역력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족 문제,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돈에 대한 스트레스, 미숙한 대인관계로 현실에 불만을 느끼던 열등감 가득한 내가 쓴 글은 절반만이 진실이었다. 여기에 특유의 자의식 과잉까지 더해져 내 글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단순한 감정의 토로에 불과했다. (심지어 부정적인 감정을 영어 단어로, 그것도 철자를 역순으로 배열하여 표현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 적도 있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쓰기를 멈추고 토익 공부와 낮은 성적을 올리는 데 몰두했다. 2010년 한 취업포털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기업 인사 담당자와 전화 인터뷰 업무를 맡은 나는 업무 특성상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이 아닌 대화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자 이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관계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사람들을 만나던 어느 날 갑자기 공허함이 찾아왔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만남을 위한 만남을 갖는 내가 보였다.
2010년 7월, 회사 개발팀 직원의 SNS에서 텍스트큐브가 테터툴즈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머리가 굳어버린 탓에 활자를 읽기가 어려웠다. 2010년 8월 퇴사 후 2011년 1월 모 식품회사에 근무하면서부터는 몰아치는 업무와 출퇴근에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빼앗겨 책 읽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달 후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고, 다시 글쓰기와 멀어졌다. 글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반추와 회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현실이 행복하다면 반추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던 유명 영화 평론가의 말이 생각 난다. (과장하자면) 글쓰기는 불행한 자의 유희인 셈이다. 2013년, 글 쓰는 직업을 갖기로 한 뒤 다듬어진 글을 올리고자 이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다시 보니 일기만 가득하다. 지금 나는 불행한가?
2014/02/18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