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from 기록 2014. 11. 8. 18:25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폭력은 시작되죠. 그들은 공포를 조장하고, 또 폭력을 유발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문제는 상대편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이에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혁명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폭력에 대응할만한 무기를 갖고 있지 못하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저항하고, 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겁니다. 진보적인 좌파의 폭력에 대한 대응은 방어적 폭력(defensive violence)입니다. 당신들이 공격을 할 경우에 우리는 대응할 것이다라는 식의 폭력인 것이죠. 공격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 170p.

 
방어적 폭력이란 (알랭  바디우가 제안한 개념으로) 국가 권력에 거리를 두고, 그 권력의 지배에서 빼낸 자유 영역들을 건설하며 오직 이 '해방구들'을 분쇄하고 재점유하려는 국가의 시도에만 물리력을 동원해 저항하는 것이다. - 171p.
 
제가 유일하게 옹호하는 폭력이란 테러리스트의 폭력이 존재하거나 독재적인 정권과도 같은 상황에서, 다소 급진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형태를 띠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적인 법률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듯 행동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자유의 영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 172p.
 
따라서 폭력에 관한 두 가지 경쟁적 지점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폭력은 이미 여기에 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폭력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폭력이 언제나 늘 있으며, 이를 내재한 그 자체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시민불복종과 같은 형태의 폭력과 잔혹한 물리적 폭력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자신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주 확실한 무기이며, 점점 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는 결코 상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국가란 그 작동이 위협받거나 가능하고 있다고 인식될 때에만 제 구실을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많은 이들이 권력을 무시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을 구성할 때, 사람들은 엄청난 힘을 갖게 될 것이고, 국가는 변화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 175~176p.
 
(중략) 이것이 바로 제가 옹호하는 폭력입니다. 상징적 폭력의 형태 말입니다. 이러한 저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있어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유는 구약성경 중 최고라 생각하는 욥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신이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외압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욥의 편을 드는 이야기가 그려져있죠. 또 하나는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입니다. 이 책에는 인간에 의해 선출된 폭군, 즉 독재자에 대한 사람들의 노예적 예속 상태는 사실상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대하고 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마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도래하죠. 권력이나 정권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이 이를 더 이상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권력의 힘을 무시하게 되는 지점 말입니다. 제가 늘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현상들입니다.  - 1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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