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글쓰기 2015. 1. 2. 22:13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짧고 깊은 잠을 청했다. 어제도 윗집의 발자국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 탓이다.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어제 인터넷으로 알아본 원룸 입주자가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교와 적당히 가깝고 월세도 저렴하거니와 바로 맞은편에 경찰서가 있어 점찍어둔 집이다. 급한 마음에 끼니도 거른 채 원룸으로 향했다.

우편함에서 방주인이 보관해둔 열쇠를 꺼냈다. 매물로 나온 집은 인터넷을 통해 보던 이미지와 달랐다. 건물 입구를 열쇠로 열고 들어가자마자 회색 시멘트 계단과 복도를 둘러싼 회청색 벽이 보였다. 90년대 유행하던 여관을 개조해 만든 원룸이었다. 문을 열고 방문을 들여다보니 감옥이나 다름없어보였다. 방 크기는 245mm인 내 발을 기준으로 가로 열 걸음, 세로 일곱 걸음 가량이다. 현관 오른쪽에는 성인 여자 한 명이 겨우 샤워를 할 정도로 비좁은 화장실이 보였다. 세탁기나 싱크대는 없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이곳에 살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와 빨래를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었다. 저는 그냥 잠만 자고, 손빨래는 화장실에서 해결했는데요.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탁은 어떻게 하는지 묻자, 그 방은 원래 세탁기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잘라 동파가 되지 않게 세탁기를 설치해줄게. 세탁기는 입주자 본인이 가져와요. 세탁기 사오면 수도비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세탁기 많이 안 돌리면 몇 천원 빼줄 수 있고. 네? 지원해주신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한 달에 두세 번 돌리는 건 괜찮은데, 너무 많이 돌리면 안 되는 거고. 아. 그럼 세탁기 돌릴 때 들어가는 수도세 지원해주시는거에요? 글쎄 내가 거기 옥상에 물탱크 안쪽에다가 세탁기 설치해준다니까.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싱크대는 없나요? 그 방은 원래 없어. 대신 학생한테 인덕션 하나 줄게. 그럼 전기세 많이 나오잖아요. 버너는 안 되나요? 원래 안 되는데, 사고 안 나게 고급형 사오면 허락해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탁기는 설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아보고 연락을 줄게요.

통화를 마친 나는 일어나 방에 한 가운데에 섰다. 사방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시멘트 바닥과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여관 건물이 시야를 가려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 고개를 숙이니 비좁은 골목에 일렬로 놓인 쓰레기통과 폐지 더미가 보였다. 새벽에만 조금 시끄럽다는 세입자의 말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나침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보니 북향이다. 이곳에서 지내려면 화장실을 부엌처럼 쓰고, 버너 폭발 위험을 감수하고 식사를 하면서 냉기를 견뎌야 한다. 방에 짐이 다 들어가지 못할 텐데. 빨래를 못 할 수도 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오래 지내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던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벽간 소음이 없으니 살 만하지 않겠나. 책 하나는 잘 읽히겠네. 경찰서도 가까우니 치안은 확실하고. 스스로 타협을 하는데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집 여자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시멘트 복도를 걸은 뒤 내가 있는 방 앞으로 난 공용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소리였다. 이 방은 복도 끝 계단 통로 바로 앞에 위치해있어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갑자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이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남향 단독 주택. 햇빛 쨍쨍한 날에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이불을 빨아 옥상에 널 수 있는 곳. 가을이면 돗자리에 붉은 고추를 늘어놓고 말릴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책도 잘 읽히고 적당히 들리는 사람 말소리에도 예민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이 어렵겠다는 말을 전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한참이나 스스로의 무능을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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