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from 기록 2016. 8. 8. 14:18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 펌이 풀린 머리카락이 보기 싫어 볼륨 매직을 해달라고 말했다. 원장이 내 머리를 만지며, 머리카락이 푸석하니 영양 서비스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가격은 오만원. 내 벌이 수준에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사양했다. 곧 수습생이 왔고, 원장은 수습생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쳤다. 거기에 사족처럼 덧붙인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을 할 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 내가 일을 할 때에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긴장을 하지 않고 축 늘어진 태도로 설렁설렁 일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 보지만,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장으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것도 일을 대하는 내 태도 때문이다. 얼마 전 엄마와 찻집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모든 일을 할 때에는 완벽하게 끝내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매사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내가 성인 자폐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꺼내자 모든 것을 병 탓으로 돌리려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완벽주의가 나를 옭아맸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건지 지금은 나사빠진 로봇처럼 멍하게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오늘은 열 두 시간이 넘게 자고 일어났다. 무엇이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좋아하던 독서도 되지 않고.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시 미용실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남자 수습생이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고데기로 펴기 시작했다. 그가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져 내 몸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볼 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 여자 수습생은 내 머리를 감겨주며 "(아까는) 원장님 앞이라 긴장했어요"라고 말했다. 수습생들이 긴장하는 걸 보니 나도 긴장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저들은 한 달에 얼마를 받고 일을 하는 걸까, 설마 열정페이는 아니겠지'부터 시작해 남자 수습생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신경쓰며 여자 수습생에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말을 해줄걸 하는 후회까지....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손님인 내게 과일까지 대접하는 이 친절한 미용실 계산대 앞에서 카드로 결제할지, 현금으로 결제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받아든 수습생과 옆에 서 있는 원장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떨떠름한 표정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카드를 다시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고작 머리 하나 하고 왔을 뿐인데, 어려운 시험문제를 푼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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