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from 기록 2014. 11. 8. 15:49
1. 금각사는 일본에 실제로 존재하는 절이다. 美에 대한 질투로 실제로 어떤 사건을 저지른 일본 승려의 실화를 옮긴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남의 아름다운 칼자루에 흠집을 남기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2. 어렸을 적 나는 (어쩌면 지금도) 美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반에 무척이나 예쁜 친구가 있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미모를 지닌 아이였다. 외모만큼 유순한 성품을 지닌 친구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친구의 습관이나 기호를 따르기 시작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손글씨마저 예뻤던 친구의 글씨체를 흉내내고, 그녀가 좋아했던 연예인에 나도 열광하며, 친구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점퍼를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시장통에서 엄마에게 울고불고 짜증을 냈다. 그녀는 일종의 워너비인 셈이었다. 친구와 비밀일기를 쓰고 편지를 교환하던 나는 우리가 절친한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왜 친구는 나와 친하게 지내는 걸까. 나는 그녀보다 나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넌 공부를 잘해서 좋겠다’는 글을 편지에 적어주긴 했지만, 우리는 성적보다 외모의 차이가 월등히 컸기에 그런 말은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친구가 나를 추켜세우는 모습은 외모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내가 그녀보다 한참 부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녀를 따르는 동성, 이성 친구들이 늘어가면서 우리 사이는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질투를 느꼈다. 주고받던 편지는 뜸해졌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우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TV나 잡지 화보를 숱하게 보더라도 친구만큼의 미모를 가진 연예인은 없었고 내 마음에 그녀의 이름 석자는 꽤 오랫동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동의어로 자리잡았다.

십년이 넘게 흐른 후 우연히 시내에서 마주친 친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뒤 같이 차를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던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살짝 찌푸린 미간과 치켜올라간 친구의 눈썹에서 삶의 피곤함이 보였다. 친구의 부드러운 입술에서 ‘지랄’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에는 허탈함마저 느꼈다.

 

3. 그리고 금각사


금각사

작가
미시마 유키오
출판
웅진닷컴
발매
200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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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버지의 얼굴은 초여름의 꽃들에 묻혀 있었다. 꽃들은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꽃들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지니고 있던 존재의 표면으로부터 무한히 함몰되어, 우리들을 향하고 있던 탈의 테두리 같은 것만을 남기고, 두 번 다시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멀리 존재하며, 그 존재 방법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소원한가 하는 점을,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여실히 설명해 주는 것은 없었다. 정신이 죽음에 의하여 이토록 물질로 변모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러한 국면에 접하게 되었으나, 지금 나에게 서서히, 5월의 꽃들이라든지, 태양, 책상, 학교 건물, 연필…… 그러한 물질들이 어째서 그토록 나에게 서먹서먹하고, 나로부터 먼 거리에 존재하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어머니와 단가 사람들은 나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면이 암시하는, 살아 있는 자들이 속한 세계의 유추를, 나의 완고한 마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면이 아니라 나는 단지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있/었/다. 시체는 다만 보/여/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보고 있었다. 본다고 하는 것, 평소에 아무런 의식도 없이 하고 있는 대로, 본다고 하는 것이, 이토록 살아 있는 자의 권리의 증명이며, 잔혹함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신한 체험이었다. - 36p (2014/09/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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