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개 같은 가을이'는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다.
최 시인을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 한 켠이 헛헛해지는데 이 감정은 시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내가 느끼는 연민 때문인지, 그녀가 노래하는 끝없는 절망 때문인지 헷갈린다. 부디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
(2014/09/02 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