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히치콕의 영화를 보았다. 찌르레기가 가득한 장면을 본 순간부터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거나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에 들를 때 거닐 때면 새가 보였다. 거리에 새들이 이렇게 많았나. 남자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얇은 벽지선 사이로 갇힌 새들이 보였다. 피곤한 탓이겠지. 그날 밤 남자는 검은 무리의 새떼가 자신의 심장을 쪼아먹는 꿈을 꾸었다.
불안해진 남자는 묘안을 떠올렸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외출할 때 새를 볼 수 없겠지. 하지만 버스를 기다릴 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꼭 한 두 마리의 비둘기가 눈에 밟혔다. 버스정류장의 비둘기들이 떼지어 그의 꿈속으로 찾아왔다. 야멸찬 눈매를 가진 비둘기와 눈이 마주치면 꿈은 끝난다. 그의 머릿속에 새에 대한 생각이 둥지를 틀었다. 식욕이 사라지고 몸은 야위어갔다. 계절이 끝날 때까지 남자는 대문 밖을 나설 수 없었다.
몇 달 후, 신문에 비둘기 15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독극물이 섞인 사람의 살점을 발견해 수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2013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