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주인 아주머니와 가벼운 등산을 다녀왔다. 자꾸만 취업을 미루고 있는 내게 사회로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고3 학생 수학 과외나 전화상담실 업무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시기에 문과 체질이라 수학은 젬병이고 어렸을 때 빚 독촉 전화를 많이 받아 전화받기가 두렵다고 대답해버렸다. 아주머니는 능력 있는 사람이 왜 이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으셨고 나는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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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마와 언성을 높였던 일 때문에 1366에 전화를 걸었다. 반년 만에 상담 선생님과 다시 통화했다. 우선 아르바이트일지라도 일하고 있는 내 상태를 칭찬해주셨다. 부모의 이혼을 자식이 강요할 수는 없다. 본인의 삶에 먼저 집중한 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는 게 옳다. 한 달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상태를 점검해나가라. OO씨가 주변의 문제에 계속 빠지는 건 스스로 집중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말을 듣는데 섬광과 비슷한 통찰을 느꼈다. 일은 구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자꾸만 능력 이하의 아르바이트 자리만 찾고 있는데, 나도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상담 선생님은 “어쩌면 OO 씨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일 거예요."라고 대답해주셨는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완벽주의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면 지원조차 하지 않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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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면 내게도 주어진 소명이 있겠지. 신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장점이 있듯이, 내게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작은 능력이 있을 거다. 작년부터 글쓰기라고 믿어 왔는데,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PC와 노트에는 잡념과 감상을 적어둔 메모들이 가득하다. 재료를 엮어 줄들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글쓰기를 미루다 보니 능력도 줄어가고 두려움이 커진다. 내게 글쓰기란 자의식을 버리는 일인데, 상담 선생님의 조언대로라면 나는 거짓과 과장이 섞인 글을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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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교수 본인이 고안한 심리검사로 사람의 성격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 뒤 유형별로 고민 상담을 진행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휴머니스트, 로맨티시스트, 아이디얼리스트, 에이전트, 리얼리스트 중에서 나는 아이디얼리스트에 속한다. 이상주의자들은 돈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우선시해야 돈이 따라온다고.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이나 공부가 아니면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지난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근무지가 집과 가깝고 여유 시간이 많은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다. 그런데 벌써 불편한 마음이 든다. 어떤 일이건 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사회성이 부족한 내가 관심사 이외의 분야에서 일하면서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콩쿠르 행사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에는 연습실 문 앞에 온종일 서 있어도 지루한 줄 몰랐던 나다.
더 늦기 전에 나의 흥미, 적성, 장점, 생활 습관에 부합하는 일거리를 찾고 싶다. 통장 잔액이 부족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