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기록 2014. 11. 8. 16:53

어느 유명 소설의 구절처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병이다.

 

오늘 독서 토론 모임에 나갔다. 내가 앉자마자 바로 옆자리 아주머니가 산만하게 펜을 들었다가 놓고, 유인물을 뒤적이다가, 스마트폰을 수십 번 들여다보았다가 책상 위에 내려놓는 행동을 반복하시더라. 강연에 집중한 내가 앉은 자세를 바꿀 때에는 신기하게도 분주한 움직임을 멈추시는 게 나를 의식하는 게 느껴져 급기야 저 아주머님이 왜 저런 행동을 하시는 건지 생각하느라 나는 강연의 흐름을 놓쳐버렸다. 강연이 끝나고 참다못해 말을 걸었다. 혹시 저 때문에 불편하셨나요? 강연에 집중하지 못하시는 게 느껴져서요. 아주머님은 얼굴이 벌게지시면서 과장되게 큰 목소리를 냈다. 아~~나요. 아~ 나 때문에 학생이 불편했구나~ 미안해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를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네? 아닌데요. 라고 말하거나 멋쩍게 웃으며 본인이 산만했던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줬을 거다. 아주머님의 거짓말에 진실을 알고 싶다는 이상한 오기 같은 게 생겼다. 좋다. 가면 벗기 연습이다. 솔직하게 나이 어린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다른 사람을 덜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의 저도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했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어린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아, 나는 학생이 수업 중간에 나를 쳐다보길래. (무얼 그리 열심히 하시는지 관심의 표현으로 바라본 건데 내 시선을 적의로 인식하셨나 보다. 해명이 귀찮은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말로 아주머님의 분주한 행동의 원인은 나를 의식했음이라는 게 드러났다.) 아……. 네. 어쨌든 미안해요. 어디 살아요? 뭐 이런 대화가 이어지다가 아주머님께 웃는 모습이 예쁘시다는 말을 건넸다. 과거의 나처럼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분 같아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내 칭찬을 들은 아주머님은 돌연 “강연자에게 미안하지 사실 학생한테 미안해할 건 아니지.” 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까는 저한테 죄송하셨다고 하셨는데 왜 다시 말씀을 바꾸시…….”까지만 말해고 입을 다물었다. 아, 결국 나도 아주머님과 동족이다.

강당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강연자와 눈이 마주쳤다. 간단한 인사 후 상대방은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길래 취업준비생이라고 대답했다. 어느 쪽으로 (취업을)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작가라고 대답했다. 몇 마디가 오간 후 나는 평론 쪽을 생각 중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마음속에서 갑자기 씨네 21 생각이 났다. 연사는 본인이 오전에 들었던 수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관점에서 바라본 문학 비평, 평론학과목이라는 게 있잖아요." 라는 말을 듣다가, 이상한 아주머니와의 대화로 얼이 빠진 나는 뜬금없이 평론학과목이 (학부 수업 중에) 있는 줄 몰랐노라고 대답해버렸다. 평론이라는 큰 대화 주제의 흐름을 좇지 못하고 좁쌀 깨물기를 해버린 셈이다. 배려심 많은 강연자는 내 말을 듣더니, “사실 저도 잘 몰라요.”라는 대답으로 대화를 마친 뒤 가버렸다.

 

나는 건널목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십여 분 가까이 생각했다. 내 대인관계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낮에 학생생활연구소 상담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MMP 검사 결과와 해석을 떠올렸다.

 

* 주 척도 : ① 건강염려증, ② 우울증-정신운동지체/깊은 근심, ③ 히스테리-권태와 무기력/신체 증상 호소, ⑥ 편집증-피해의식/순진성, ⑦ 강박증-신체적 호소, ⑧ 조현병-특이한 지각 경험, ⑩ 내향성

* 재구성 임상 척도 : 의기소침, 신체증산 호소, 피해의식, 기태적 경험

* 내용척도 프로파일 : 불안, 우울, 건강염려, 직업적 곤란

* 보충 척도 : 대학생활 부적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평균치를 벗어난 척도들이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어때요?" 라고 물었다. MMPI 검사 당시 스토킹으로 불안해하던 상황이었고, 어쩌면 잘못된 신앙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상담 선생님은 어쩌면 내가 교리를 naive하게 믿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종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성경과 교리서의 내용을 완벽히 따르려고 노력했었다. 편집증의 하위척도 중 순진성은 처음 보는 항목이라 뜻을 물았다.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과 관련되어 있단다. 자폐, 아스퍼거 장애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MBTI 검사 해석 중 결과지에 적힌 내 유형의 대표적 표현들 단어를 읽어보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지, 묵독해야 하는지를 되물었다. 곧바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임을 인식한 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방금 상황처럼 단어를 맥락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뜻을 우선시하고 분명히 하려다 보니 소통이 어렵다, 윗사람으로부터 쓸데없이 따지거나 말대답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노라 고백했다. MBTI 결과, 나는 INTP 유형이다. 정확히는 I(45), N(23), T(9), P(35)다.

 

괄호 안의 숫자는 선호 환산 점수를 뜻한다. 예상은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알파벳 하나쯤은 바뀌어 다른 유형의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혼자 오래 지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니냐고 물으니, 혼자 있을 때 되려 본성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난다고. 완벽주의 기질이 다분한 강박 성향 짙은 내가 인식(P) 형이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뜻밖에도 판단(J)형의 사람들보다 인식(P) 형 사람들이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단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인식형 사람들은 개방적인 생활양식 때문에 오히려 완벽주의를 추구할 수 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양식과 추구하는 경향은 다를 수 있다고 이해했다. 나와 반대유형인 ESFJ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는 착한 척과 비슷하다. 사고(T) 선호 환산 점수가 낮아졌는데, 작년에 모 기관에서 상담을 받으며 내가 사고로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권유대로 음악을 듣고 문학을 읽은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인 모를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어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결국 나도 인간인데, 왜 이렇게 사람 대하기가 어려울까. 종교도 답이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건강하게 해 줄까?

 

2014/03/2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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