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침대에 누워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온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는데, 몽롱했던 머리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나는 승리하리라) 뭐 이런 패기어린 제목의 책을 읽는데, 종교는 두려움의 씨앗을 심어 활동하게 한다고 하더라. TCI 검사 결과를 떠올렸다. 내가 열심히 성당에 나가는 이유는 첫 번째 남자친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주 토요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좋은 영화를 상영해준다. 갑자기 토요일 성당 교리반 봉사를 하기 싫어졌다. 여러모로 시간 낭비다. 엄마에게 토요일 봉사활동이 끝나고 본가에 들르겠다고 연락을 했다. 토요일 아침, 대모가 대 주었던 여성분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아니면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혹은 토요일마다 내가 하려는 일(영화 평론)에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월세도 걱정이었다. 본가에 들르기 위해 캐리어를 들고 성당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그만두겠다는 말을 전하고 바로 본가로 가려고 했는데, 대모의 환한 얼굴을 보니 막상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겠더라. 초등부 미사를 끝내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안 맞는 것 같고 가치관에 변화가 생겨 앞으로 못 나올 것 같아요. 싫은 내색 없이 내 의사를 존중해주고, 미사 때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를 받았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낌새를 눈치 챈 대모님이 왜 그러느냐며 다음에 보자는 말을 자꾸 하시던데, 대답을 얼버무렸다. 성당을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울먹이는 목소리다. 많이 아프신가보다. 캐리어를 끌고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엄마의 울음소리에 당황해서 길을 헤맸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나는 엄마 감정에 휩쓸려 살아야 하나. 나는 암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항암치료가 얼마나 아픈지는 모르겠다만. 엄마를 생각하면 항상 이중적인 감정이 든다. 본가에 도착하니 엄마 목소리가 나아져있다. 여동생과 저녁을 먹었다. (2014/03/23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