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 늘그막 하게 일어나 구청에 들렀다.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았다. 민사 소송을 진행한다면 증거가 필요하다.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거나 내게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편지를 쓰거나 구두로 의사 표현을 하여 증거를 확보해두라고. 증거를 모은 뒤에 제삼자에게 이야기 한 내용을 녹음해두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 법은 '조례'까지만 강제력이 있다. 그러니까 공동주택관리 규약은 어디까지나 규정에 불과하다.
보건소에서 구강 검진을 받았다. 어금니 상하좌우에 아말감이 떨어졌고, 스케일링 시술이 필요한 상태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악관절 장애가 재발하여 입을 크게 벌리지 못 했다. 악관절 장애와 턱이 빠진 이력 때문에 보건소에서 치료를 거부당했다. 악관절 장애 진료를 받으려면 대학병원 (서울대나 경희대) 구강외과 혹은 내과를 찾아가라고 추천해주더라. 인바디를 측정하고 식단 표를 받은 뒤 구청을 나왔다.
모교로 곧장 돌아온 나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주인공의 찌질함에서 보복 소음을 내는 원룸 이웃 학생의 모습을 보았다. 내 과거 모습이기도 하다. 하루를 복기하느라 글자를 읽기 어려웠다. 대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새내기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학교가 얌전해진 느낌이다.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학생들은 14학번일거다. PC 실에 들러 다음날 면접 볼 회사 정보를 살펴야 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대신 블로그 이웃의 추천 이웃을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내게 까칠했던(당시에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아는 동생의 사진이 나타났고, 나는 당황했다. 다시 열람실로 올라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는데, 머리가 멍해진 느낌이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대사증후군 검사를 받기 위해 저녁 10시부터 끼니를 굶은 나는 모교 수면실에서 잠이 들었다.
여덟 시간을 조용한 곳에서 잤더니 전날 저녁 식사를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식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면실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잠을 너무 오래 잤다. 면접 시간에 맞추려니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허겁지겁 정장을 갈아입는데 검정 스타킹이 보이지 않았다. 맨살을 드러낸 다리로 집을 나와 슈퍼에 들러 스타킹을 사고 즉석에서 갈아 신었다. 택시를 탔다. 버스로 삼십분 정도 걸릴 거리인데, 택시비는 5500원이나 나왔다. 시간은 돈이다.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는 집 주인아주머니의 충고가 계속 떠올랐다. 면접을 보는데 첫 느낌은 좋았으나, 후반부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면접 내내 무표정으로 있다가, 배경 지식보다 글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부터 웃었던 것 같다. 연봉은 사측에서 제안한 액수보다 10%를 높은 금액을 원한다고 말했다. 내 처지에 너무 튕긴 게 아닐까 싶었지만,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 인사 담당 파트장이 연봉 협상 때에는 본인의 실제 수준보다 조금 높게 부르는 편이 유리하다고 말한 기억이 나서다. 내 면접관으로부터 글 쓰는 사람 특유의 감성을 느꼈다. 어쩌면 내 마음을 꿰뚫어보셔서 면접 후반부에 내가 좋지 못한 기운을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좋고 싫음이 표정에 너무나 잘 드러나기에 스스로도 피곤하다.
2014/03/04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