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서 온라인 철학 강의를 듣고 구립 도서관에 들러 김수영 평전을 읽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잡지 교육원 강사 H 선생님이 주최한 모임 메일을 확인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공덕역 통닭집에 강사, 나, 아버지 연배의 신문기자 이렇게 세 사람이 모였다. 기자보다 시인에 가까워보이는 아저씨는 본인을 드러내는 게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기자 선생님은 나와 H 선생님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고 덧붙이신 후 자리를 뜨셨다. H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원에서 나를 둘러싼 좋지 않은 말이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H선생님)는 당신(나)을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드렸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다. H 선생님은 침묵이 어색하셨는지 “모임에 나와 주어 고맙다,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다.” 라며 거듭 나를 칭찬하셨다.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심하게 얼어붙은 나는 H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오로지 내 이야기에만 반응할 뿐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 됐어, 넘어가”라는 말씀에 나는 홀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제 생각에 빠져있는 상태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죄송하다고 변명했다. 선생님은 내게 왜 살이 쪘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선생님께 난독증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당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처방이 이어졌다. 2차로 옮긴 술집에서 나는 어렴풋이 철학을 알고 나니 세상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고, H선생님은 내 휴대전화 번호를 당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하도록 시키신 후 잠이 드셨다. 계산을 하고 H 선생님을 깨웠다. 잠깐이나마 H 선생님이 대화에 지루함을 느껴 잠든 시늉을 하시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혼자 조용히책이나 마저 읽을 걸 그랬다. 씁쓸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술을 마셨다. 벌써 2014년 1월 1일이다.
2014/01/01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