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러다 욕창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무작정 자취방을 나와 학교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어제 저녁 6시부터 오늘 오후 1시까지, 그러니까 총 열 아홉 시간을 모교에서 보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데 두 시간, 멍하니 앉아 있는 데에 세 시간, 스마트폰으로 웹서핑 세 시간, 나머지는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읽고,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책을 두 페이지 이상 읽기가 힘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도서관 서가를 한 바퀴 돌며 책등을 훑었다. ‘읽기곤란에서 난독증까지’라는 책을 대출하여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말까지밖에 읽을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와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을 읽었다. 다시 책을 펼쳤지만 난독증은 여전하다. 노트를 꺼내 젊은 여자를 그렸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친김에 머릿속에 들어찬 잡념들을 모조리 적었다. 쓰면 쓸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늘 그렇듯이 결론은 없고 쓸데없는 분석만 가득하다. 그래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낙서한 종이를 버리지 못하고 파우치에 접어 넣었다. 파우치는 이전에 끄적인 낙서와 메모로 이미 부풀어 있다. 책을 읽지 못할 바에 쓰기라도 하자. 다른 노트를 펴고 마르코 복음서를 필사했다. 어느새 창 밖이 환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일출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몸은 노곤하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하다. 지금 내 꼴은 동네 구립 도서관 1층에서 후줄근한 차림새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는 고시생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이제는 자학에 쾌감을 느끼는 경지가 되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져서야 학교를 나왔다. 끼니를 거르고 씻지 못해 꾀죄죄했지만 몸은 가벼웠고,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상쾌했다. - 2013년 11월 20일에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