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1일, 열다섯 살의 나는 첫사랑에게 고백 후 보기 좋게 차였다. 상대는 같은 보습 학원에 다니는, 다소 수줍은 성격의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고, 학원에서 내 소식은 곧 화제가 되었다. 소문이 부담스러웠지만, 평소와 달리 내게 쏠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학원에 갈 때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며 외모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렸다. 학원 여교사들은 그 아이의 어떤 면이 좋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럴때면 단발머리 영어 강사가 루주를 덧바른 입술을 뻐끔거리며 콤팩트 파우더 거울에 비친 내게 어이없다는 눈길을 던지곤 했다.
고백은 빼빼로 데이에 하는 거야. 쾌활한 성격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많던 친구의 조언이었다. 시내 번화가에 들러 선물 상자를 사고, 빼빼로와 장식물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11월 11일. 이미 여러 개의 빼빼로를 챙기고 누구와 사귈지 고민하던 친구는 우물쭈물한 나를 학원 봉고차 안으로 떠밀었다. 통학차를 둘러싼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말아 휘파람을 불어댔고, 여자 아이들은 팔짱을 낀 채 무리지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물 상자를 건네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 라고 답하던 상대방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한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노, 수치심, 자기 연민 따위의 감정이 밀려왔다. 지가 뭔데 날 차? 다음날 학원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고민했다. 학원을 옮겨야 하나? 내가 차였다는 소문이 퍼졌을 텐데 쪽팔려서 학원은 어떻게 다니지?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반성이 빠르다는 점이다.) 나는 그 아이보다 이성을 향한 설레는 내 감정을 더 좋아했구나.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고백 후 결과가 어찌됐든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원을 몇 달 더 다닌 후 이사를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2013년 11월, 즐겨 찾는 온라인 쇼핑몰 비밀번호를 바꾸다가 1998년 빼빼로 데이를 떠올렸다. 1998년 겨울부터 2011년 봄까지 내 모든 웹 사이트 계정, 자물쇠, 통장, 휴대폰 잠금 비밀번호는 그 아이의 집 전화번호 끝 네 자리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의 전화번호 뒷자리를 비밀번호로 쓰는 습관이 생겼다.
대희야, 잘 지내니?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 때 빼빼로는 그냥 받아주지 그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