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을 읽고

from 기록 2015. 8. 15. 17:44

설국은 공감각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묘사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고요하면서도 잔잔히 눈으로 뒤덮인 마을의 정취가 흘러 넘쳤다. 너무나도 유명한 첫 문장부터 캐릭터와 배경까지를 여성적인 섬세한 필체로 그려냈다. 게이샤 고마코에 대한 외모 묘사[각주:1]에는 관능미가 숨어있고, 주인공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몸짓에는 성적인 긴장감이 녹아있다. 많은 독자들이 지적하듯 세밀한 묘사 때문에 소설 자체가 시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플롯을 중심으로 읽다보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주변 정취를 인물의 심정이나 상황에 맞추어 활용하는 디테일이 무척이나 훌륭하기에 단점을 덮고도 남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후반, 마을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은 설국의 이미지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은하수 빛에 비추어 물안개가 희뿌옇게 피어나는 장면 역시 압권이었다.

 

 

 

  1.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퍼졌다 줄었다 했다. 다물고 있을 때조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만약 주름이 있거나 색이 나쁘면 불결하게 보일 텐데 그렇진 않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눈꼬리가 치켜올라가지도 처지지도 않아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은 뭔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짧은 털이 가득 돋아난 흘러내리는 눈썹이 이를 알맞게 감싸주고 있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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