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 P를 만나고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왔다. 집에 오니 아빠가 왜 연락이 되지 않았냐고 타박하셨다. 휴대폰 배터리가 꺼진 사이에 사장이 내게 연락을 했고, 통화가 되지 않자 사장이 우리 집에 전화를 건 것이다. 아빠가 전화를 받았단다.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고 전원을 켜는데 이거 혹시 월요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이 아닌가 싶어 긴장했다. 내용을 확인해보니, 인터뷰 기사를 월요일 오전까지 작성하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다행이다.

오늘 P에게 회사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와 좋아하는 선배 이야기를 했다. P 말로는 내가 나를 까고있다고 한다. 선배 이야기를 듣더니 나더러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설사 사귀게 된다 하더라도 힘들게 뻔히 보이는 연애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을 접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맞는 말인데,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서점에서 심리학 책 두 권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문학을 잘 읽지 않게 된다. 요즘 심리학과 철학 관련 도서를 읽는다.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책을 읽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선배가 내게 보여준 글과 내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어제 취재를 나가는데 취재 나가기 싫지?”라고 두 번이나 내게 물었다. 여동생이 최대한 이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의지를 어필하라고 한 조언을 생각하여 왜 그러세요.”라고 정색했는데 또 묻는다. 다시 왜 그러세요를 말하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선배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하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된다. 언제부터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더니 내 인생이 그대로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이렇게 불안하다가도 오늘 읽은 심리학책에서 인생의 1순위가 일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문장을 보고 위안을 삼는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내가 백수로 지낼 때를 떠올려본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권태로운 나날들이었다. 심지어 책도 잘 안 읽혔다. 진짜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서점이나 독서실에서 홀로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쓰기보다 읽기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읽기를 소홀히 해서 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은가? 사실 소설가보다는 평론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지 못하다보니 차라리 창작이 낫겠거니 생각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꿈을 정한 거다. 소설가가 되려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 병에 대한 것 이외에는 아직까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바가 없다. 내 주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진짜 꿈을 가진 사람은 이미 행동을 하고 있다던데 나는 일기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써둔 글도 없고 글재주도 신통치 않은 편에 속한다. 내게 어울리는 옷은 무엇일까. 일단 많이 읽고 쓰다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올해 남은 시간을 다독과 다작에 바치려 한다. 소설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내 인생 경험은 나름대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경험들을 풀어낼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깜냥을 늘리기 위해 뭐가 됐든 써보자


* 며칠 전 교육원에서 알게 된 C에게 내 병을 털어놓았다. C도 자기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C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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