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는 담배 한 갑과 라이터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호프집을 빠져나와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웠다. 어디선가 희미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반대쪽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훑었다. “씨발.” 그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욱여넣은 뒤 입에 문 담배를 바닥에 던져 힐로 비벼 불을 껐다. 아스팔트 위로 나이트클럽 홍보 전단지와 쓰레기가 나뒹굴고 거리의 사람들은 짝을 지어 다녔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호프집 계단을 올라갔다. 일찍 취한 사내들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맥주를 들이마셨다. 식어버린 안주를 하나 집어들었다가 곧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집에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발을 끌며 카운터로 향한다. 계산을 마치고 호프집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그렇게 미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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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노래 한 곡을 써보라.

from 글쓰기 2015. 10. 27. 01:00


당신은 차가운 분홍 같은 사람

, , 입의 경계가 문드러지고

하나의 덩어리로 남았다

멀리서 아득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당신을 위한 문장을 만든다

흰 달이 뜬다니 조심해서 걸어야겠어

나는 오늘도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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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일생에서 기억에 남는 밥상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쓴 글은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 우리 집 밥상머리에서 욕지거리가 오가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글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의 주식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아파트를 팔고 월세가 저렴한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당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와 채 삼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공동주택이었다. 다섯명이 살기에는 너무나 좁았던 그 집에서 나는 아버지의 무수한 욕지거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어느날 아침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나와 여동생, 아버지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화를 냈고, 쌍시옷이 들어가는 말이 떠다녔다. 여동생은 밥숟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피했고 나는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향해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던졌다. 무거운 물건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족 중 누구도 한 번 성이 난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모래가 된 밥을 우물거리며 지옥 같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했던 욕은 악마같은 년, 악랄한 년, 너희들은 저주를 받을거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아버지는 영업을 하고 사람을 상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밉지도, 가엾지도 않다. 하지만 왜 꼭 밥상머리에서 가족들을 향해 이유 없는 욕을 퍼부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압도적인 무언가가 아버지를 눌러서 화가 삐져나온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한동안 밥을 빨리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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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듯이 보였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이어폰의 볼륨을 높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침묵이 사라졌다. “잘 가” “내일 봐요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척 하다가 돌아서서 조용히 그의 뒤를 밟는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빠른 속도로 왼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가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나 역시 조금씩 보폭을 늘인다. 그가 편의점에 들어섰다. 편의점 근처 건물 앞에서 나는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그의 행동을 주시한다. 그의 손에 캔 맥주가 하나 들려있다. 편의점 문을 나서자마자 손에 든 맥주 캔을 딴다. 흘러넘치는 거품을 재빨리 입으로 핥은 뒤 다시 빠른 보폭으로 걷는다.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수사망을 좁히는 형사처럼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오 분쯤 걸었을까,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정류장에 멈춰선 그는 남은 맥주를 모조리 들이킨 뒤 캔을 찌그러뜨린 후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 의자에 올려놓는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을 눈치 챘다. 그는 회사에서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 역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Radiohead'Down is the new up'이 흘러나온다. 그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며 무엇인가를 살핀다. 나는 그를 놓칠세라 버스 정류장 칸막이 뒤에 숨어 빈틈으로 그의 행동을 엿본다. 그는 7로 시작하는 초록 버스를 탔다.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그를 지나쳐 제일 뒷좌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그를 관찰한다. 그는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알록달록한 액정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릴때마다 그의 야윈 어깨도 들썩거렸다. 그가 내릴 정류장을 모르는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의 모습을 쫓기가 힘들어졌다. 순간, 그가 일어나 벨을 눌렀다. 나는 뒷좌석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며 그가 버스에서 내린 다음 그를 따라 내렸다. 거리는 어두워져있었고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오갔다. 그의 보폭은 다시 빨라졌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있었다. 가방을 뒤적이며 담배를 꺼내 문 그는 오른손으로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숨을 쉬고 뱉을 때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터에는 그 말고도 붉은 기운이 도는 머릿결을 지닌 여성과 양복을 입은 사내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흡연 구역으로 보인다. 그는 짧게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과 고가도로 사이에 난 길로 들어섰다.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다.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나는 당신이 듣는 음악이 궁금하다. 편의점을 지나 동네 작은 헤어숍과 복권 가게, 부대찌개 전문점을 지나 한참을 걸은 후에 그가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냉면집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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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白紙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

지인들 말로는 내가 금사빠라고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주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 두 번째 남자친구가 그랬고, 현재 내 짝사랑 상대가 그렇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사람이 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느냐 하면, 일단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멀티태스킹과 거리가 먼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을 깊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에 빠지면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을 그만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

 

-얼마 남지 않은 통장의 잔고

철새처럼 직장을 옮겨다니다보니 통장에 잔고가 넉넉할 리 없다. 씀씀이가 크지 않은 편이라 돈을 버는 일에도 소홀한 듯하다. 친구들의 경조사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진다. 크지 않은 씀씀이는 어쩌면 버는 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설사 전업 작가가 된다 해도 통장의 잔고는 여유가 없는 날이 많을 테다. 회사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동생과 쇼핑을 하며 돈을 많이 썼던 날이 있다.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 동생이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을 썼다. “언니 통장이 놀랐겠네.” “?” “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써서.”

 

-깊이 패여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엄마는 1961년생, 아버지는 1955년생이다. 환갑을 넘긴 아버지는 눈매의 살이 쳐져 눈을 덮어 우는 상이 되었다. 엄마는 눈을 치켜뜰 때마다 이마에 주름이 패인다.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도 두렵지만 내가 의지할 곳이 사라진다는 것도 두렵다. 나는 아직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나보다.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날을 상상한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능력이 있으니 그런대로 잘 살겠지만 나는 집도 없이 혼자 버려져서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근근히 명을 이어가겠지.

 

-퇴사를 권유하는 상사의 목소리

올해만 들어 직장을 세 군데나 다녔다. 지금은 무직상태. 자진 퇴사한 곳은 한 군데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권고사직이다. 그나마 그 한 곳도 반 강제로 그만둔 곳이나 다름없다. 일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절반은 내 병 때문이기도 하다. 상사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다보니 정상적으로 근무하기가 힘들어졌다. 한 군데에서는 카카오톡 메세지로 퇴사를 통보했고, 가장 최근에 다닌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면담을 통해 해고를 통보받았다. 인생에서 실패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역시 씁쓸한 일이다.

 

-백지

이건 사실 부끄러운 고백인데, 언제부터인가 백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내 글은 솔직하지만 세련되지 못하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다독과 다상량. 나는 이 두 가지가 부족하다. 백지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에 나온 주제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중이다.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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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videotape’을 듣고.

 

멀지 않은 과거에 비디오테이프라는 게 있었다. 주로 영화를 볼 때 비디오 플레이어에 이 물건을 집어넣어 재생시켰고, 비디오 플레이어에 녹화 기능이 있어 내가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녹화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가정용 비디오테이프의 크기는 가로 18.7cm, 세로 10.3cm, 높이 2.5cm이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마음이 앞선 십대들은 누구나 한번쯤 부모님 몰래 야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보다가 테이프 부분이 플레이어에 씹혀서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내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지 궁금한 영화 타이타닉을 부모님 몰래 보다가 테이프가 플레이어에 걸린 것. 나는 이 일로 몇 차례나 동생을 놀렸던 기억이 난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지만 90년대 초반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매체가 TV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원하는 영상을 보려고 하면 녹화를 떠 둔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재생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돌잔치, 입학식, 졸업식과 같은 행사 날에는 8mm 홈비디오 캠코더로 영상을 찍어 비디오테이프로 간직했다. ,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추억 하나 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보다가 좋아하는 가수가 TV에 나오면 재빨리 쓰지 않는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삽입한 뒤 녹화 버튼을 누르던 게 생각난다. 그런 식으로 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 녹화해 한 시간짜리 긴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 통학하던 버스에서는 중앙에 TV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돌 가수의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와서 서로 자기 것을 틀어달라고 경쟁하곤 했다.


그랬던 비디오테이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아마도 인터넷이 대중화된 무렵부터인 듯하다. 집에 있던 비디오 플레이어는 부모님이 이사를 하면서 버린 것 같고, 내 유치원 시절이 찍힌 비디오테이프도 보이질 않는다. 풀지 않은 이삿짐 어딘가에 쑤셔 박혀 있을테지만 유년기의 추억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다. 포스트잇처럼 쉽게 찍고 쉽게 지울 수 있는 지금의 영상들도 분명 장점이 있지만, 한 번 찍으면 테이프가 늘어져 닳을 때까지 돌려보던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추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다. 요즘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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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책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단숨에 읽어보았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김혜리가 만난 사람이라는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네이버에 유시민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자동완성어로 항소이유서가 뜬다. 이는 유시민이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1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해 제출한 글이다. 유시민은 호소력 짙은 논리적인 이 글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구절이다. 최근 들어 백지만 보면 두려움을 느끼던 나는, 내가 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지 어렴풋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이 없는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운 법이다. 글쓰기에 앞서 나만의 감정과 생각을 다루는 법을 살펴야겠다. 


 # 유시민의 추천도서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김영사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리처드 파이만 강의, 풀 데이비스 서문, <파이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락원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우물이있는집
  스티븐 핑커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 와이즈베리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신영복, <강의>, 돌베게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동서문화사
  앨빈 토플러, <권력의 이동>, 한국경제신문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에리히 프롬,<소유냐 삶이냐>,흥신문화사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문화사상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어크로스
  제임스 러브록, <가이야>, 갈라파고스
  존 스트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흥신문화사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켈스, <공산당선언>, 책세상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케이트 밀렛, <성性 정치학>, 이후
  토머스 모어,<유토피어>, 서해문집
  한나 아렌트, <예류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은행나무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 추천 다이제스트 책
  가마타 히로키, <세계를 움직인 과학의 고전들>, 부키
  강신주,<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강유원,<역사 고전 강의>, 라티오
  강정인 외, <고전의 향연>, 한겨레 출판
  다케우치 미노루 외, <절대지식 중국고전>, 이다미디어
  사사시 다케시 외, <절대지식 세계고전>, 이다미디어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
  함영대,<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 고전 100>, 팬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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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from 글쓰기 2014. 12. 28. 02:39

책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내가 언제부터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했을까. 성인이 된 후 독서량이 급격히 줄은 탓도 있지만 제일가는 이유는 자기검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내 글은 심지어 일기마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두운 나를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었다. 백지를 보면 불행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내 느낌을 표현하는 글짓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학부생 때 독서 감상문 따위를 제출하며 쾌감 비슷한 걸 느꼈다. 내 감정을 다듬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내 안에 몽글거리는 무언가를 밖으로 빼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잠시나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부분의 창작자가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깊은 곳에서 잠자던 감정 덩어리들은 밖으로 빠져나와 글로, 음악으로, 혹은 조형물로 표현된다. 창작자는 최초의 덩어리를 어떻게 다듬을지 고민할 것이다. 덩어리를 더하거나 빼거나 때로는 뒤틀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든다. 중요한 건 덩어리의 핵심을 손상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 중요한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술가의 직관은 언제나 옳다. 내가 글쓰기를 두려워한 두 번째 이유는 내 인식의 필터를 믿지 못해서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 생각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글은 작가의 인식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문, 다독, 다상량. 그리고 많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어떤 음식을 맛보았으며, 무슨 감정을 느꼈는가. 노트에 오감을 기록해두면 좋은 글감이 되겠다. 글쓰기에 대한 오감을 떠올려본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순간의 서걱한 촉감, 각진 연필을 꽉 쥐고 나면 오른손 중지 왼편에 느껴지던 굳은살, 새 노트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을 베던 종이날,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종이 그리고 종이냄새, 원고지의 가지런한 빨간 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쓴 희곡 정도다.


지금은 (그나마도 짧았던) 회사생활을 접고 재취업을 위해 토익 시험을 준비하며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다독, 다작만큼 좋은 스승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이곳에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올리려 한다. A4용지 한 장을 빼곡히 글로 채우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개중에는 말끔한 글도 있고, 지금처럼 두서없는 글도 있겠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계속 쓰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매일 글을 쓰다보면 지금보다 한결 나은 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연수 작가는 그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작가를 ‘현실에서 실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기억의 우물을 퍼 올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인간 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꺼내 보이는 존재들.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글쓰기를 작가의 삶을 파먹고 사는 촌충에 비유한다. 글쓰기가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운 직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글쓰기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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