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

from 카테고리 없음 2016. 4. 10. 18:44

아래는 끝까지 읽은 책들.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죽어가는 짐승 - 필립 로스


황인찬 시인의 이름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처음 접했다. 젊은 시인은 어떤 시를 쓸지 궁금했는데, 그의 시를 읽고 놀랐다. 시어와 시어 간격이 투명하고 여백이 있다. 한 시에 등장하는 사물인 '백자'처럼. 표현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무어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투명한 느낌이 좋았다.

두 번째 책은 이웃 블로거의 별 다섯 추천을 받은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박범신의 '은교'가 떠올랐다. 육십이 넘은 남교수의 성욕과 지성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야한 내용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소설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꼈다. 필립 로스의 지적인 표현력이 일품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다음과 같다.


애니어그램의 지혜 - 돈 리처드 리소, 러스 허드슨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일레인 N. 아론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애니어그램의 지혜' 본문을 보고 자가 테스트 한 결과, 나는 애니어그램 4번에 5번 날개를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초반 MBTI 검사 결과, INTP유형에 애니어그램은 5번이었다. 현재 정식으로  MBTI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친구 말로는 INFP로 보인단다.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서 감정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탐구에 대한 욕망은 남아 있어 5번 날개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성과 감정이 골고루 어우러진 사람이 되고 싶다. 도서관에서 '신과 나눈 이야기'를 찾다가 같은 서가에 꽂힌, 우연히 '만들어진 신'을 보고 도킨스의 책을 집어든 건 죽어가는 지성(-.-)을 깨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만들어진 신을 읽는데, 독해가 쉽지 않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은 탓일테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부모님께서도 나를 민감한 사람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좋아하는 이가 읽던 책이다. 김영하의 팟캐스트에도 추천된 적이 있어 읽는 중인데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도킨스의 책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꾸준히 읽을 생각이다. 

소설쓰기 모임에서 소설 작법책을 정해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책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며칠 전 합평에서 내가 쓴 소설이 '발사되지 못한 총알'같다는 비유를 들었다. 또 다른 분은 소설 작법에 관한 내용을 장문의 카톡 메세지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여러모로 자극이 된다. 조만간 작법책도 읽어야 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 보다는 여러권을 동시에 읽는 편이구나.


바쁜 한 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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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uman 4.0 -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인간은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게 된다.

2. Distrupted Nation States - 다양한 국가 연합이 등장한다.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다.

3. Internet Giants -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70% 정도를 현재 아직 태어나지 않은 기업이 차지할 것이다.

4. Digital Currencies - 세계 단일통화가 나오기 전에 먼저 디지털 통화가 세계를 하나로 묶을 것이다.

5. Brain Upload - 인간의 뇌를 매핑하여 정보와 지식을 클라우드 등의 가상공간에 올린다.

6. Immersive Life - 가상현실이 삶을 대신해주는 미래가 온다.

7. AI Robotics - ‘AI 로봇이 인간의 모든 삶을 주도하고 대행한다.

8. Internet of Things - 사물에 센서, , 인공지능 등이 삽입되면 모든 사물이 인간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인간을 지원할 것이다.

9. Synthetic Biology - 2045년에는 합성생물학이 최대 산업 가운데 하나로 부상할 것이다.

10. Disrupted Family - 결혼제도가 붕괴하고 수시로 파트너를 맞아 공동생활을 하다가 일을 찾아 이동하는 식으로 가족구조가 변한다.


<유엔미래보고서 204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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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읽은 두 책

from 기록 2015. 8. 25. 13:49

-김애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을 읽었다. 비행운(飛行雲)은 항공기가 남기는 가늘고 긴 구름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고 나면 책의 제목이 飛行雲이 아닌, 非幸運으로 읽힌다.

가장 가슴이 먹먹했던 단편은 ‘서른’이다. 20대 여대생 ‘수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 남자친구의 말에 속아 다단계 피라미드에 빠져 자신의 제자까지 끌어들이고 만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수인의 처지와 지금의 내 상황이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갔다. ‘서른’을 제외하고도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 속 골리앗’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아슬아슬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내가 작가라면 어떻게 썼을까 상상하면서 읽었을 때 가장 인상깊은 단편은 ‘벌레들’이다. 사소한 주제로 긴장감을 높이는 전개가 좋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50대 중반 여성의 하루를 그린 ‘하루의 축’은 인물 설정과 문제의식이 좋았다.

 

-이병률 작가의 여행산문집, ‘바랍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읽었다. 작가가 세계 100여국을 여행하며 직접 찍은 사진과 글로 엮은 책이다.

네이버에 ‘이병률’을 검색하면 ‘이병률 결혼’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보인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에게 매력을 느낀 여성 독자들이 검색한 결과인 듯싶다. (정작 이병률 작가는 독신주의자라고 한다.)

수필에는 글쓰는 이의 감성과 생각이 오롯이 담길 수밖에 없다. 내가 본 이병률 시인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MBTI로 따지면 INFP 유형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 이병률 작가의 팬이라면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특유의 감정 과잉이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산문을 시로 압축해서 썼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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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3부작 세트 중 1권인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었다. 저자의 직관과 경험이 녹아있는 이 책은 삶에 필요한 지혜를 알기 쉬운 말로 풀어냈다.

 

이 책은 훈련, 사랑, 성장과 종교, 은총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 훈련은 ‘삶은 고해다.’라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명제로 시작한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는데,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퇴행이 온다. 칼 융은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라고 말한다. 즐거운 일은 나중에 하라는 조언 역시 충분히 곱씹을 필요가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버릴 구절이 없을 정도로 인상 깊게 읽었다. (사실 사랑이라는 장만 집중해서 읽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① 사랑의 목적은 정신적 성장이다.

② 사랑은 하나의 순환적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는 과정이란 진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자신의 한계를 성공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이전보다 엄청난 존재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이 타인의 성장을 목적으로 할 때도 사랑의 행위는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는 진화 과정이다.

③ 사랑의 정의는 남을 위한 사랑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남을 사랑할 수도 없다. 또 자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녀가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자라도록 훈련시킬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정신적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기 훈련을 포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훈련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④ 자기 자신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노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비로소 표현되며,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할 때라야만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 참된 사랑이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서(또는 자신을 위해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사랑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 사랑은 무척 힘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⑤ 사랑은 행위로 표현되는 만큼만 사랑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약간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사랑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사랑은 의지에 따른 행동이며, 의도와 행동이 결합된 결과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에 대한 통찰 역시 무릎을 치게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히 성적인 것과 관련된 애욕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또는 친구를 아무리 사랑할지라도 아이들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성적으로 자극되었을 때에만 사랑에 빠진다.”라고 주장한다.

 

의존을 사랑과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말 역시 정곡을 찔렀다. 내 경우 의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지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어서 스캇 펙 박사의 일침에 부끄러워졌다. “사랑을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걸 성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건전한 결혼은 오직 강하고 독립된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는 말 역시 건강한 사랑을 위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사랑일까. 저자에 따르면, 사랑하는 일이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은 경청이다. 사랑이란 부지런한 자만이 성취할 수 있으며 사랑하지 않음은 곧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같다.

-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모든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 기반이 된다.

-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한 자세이다.

-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개성과 특징을 알아주고 존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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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근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꼴로 죽어나가고 있다. 지역별로는 동남아시아가 18%, 아프리카 35%,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주민 15%가 굶주리고 있다. (기아가 가장 심한 대륙은 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공익광고나 NGO의 팜플렛에 실린 사진을 통해 비쩍 마른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동정심에 후원을 고민하는 정도다.


  책의 제목처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것일까. 저자인 장 지글러는 기아 문제의 원인으로 전쟁, 권력의 부패,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꼽는다. 이들의 꼭대기에는 인류애가 배제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가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합리한 경쟁에서는 다수의 약자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개혁을 통해 기아 문제를 타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 상카라(T. Sankara)1983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공공 서비스를 실시하고, 인두세를 폐지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해소했다. 덕분에 상카라가 집권한지 4년 후, 부르키나파소는 식량 부분에서 거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개혁은 이웃 국가의 독재자들과 관계가 악화된 계기가 되었고, 결국 그는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그의 동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은 난민캠프에서의 불가피한 선별작업이었다. 열악한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부족으로 난민캠프에서는 간호사가 몸과 뇌가 손상되지 않은 사람을 선별하여 이들을 우선적으로 구조한다고 한다. 간호사에게도, 선별되지 않은 이들에게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해결책으로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원조보다 선행하는 개혁, 자급자족 경제의 구축, 인프라 정비를 주장한다.

기아와의 전쟁은 굉장히 많은 구조적 요인들이 연결되어 있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취업도 안하고 부모님께 생활비도 드리지 못하는 내가 세계 기아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해서다. 기아 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걱정을 하고,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겠지만 그게 나여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우리집 형편이 좀 어렵다. 쌀을 사지 못한 내가 세계의 기아에 대해 걱정해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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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from 글쓰기 2015. 6. 16. 23:09



사진은 내가 즐겨 찾는 우리 동네 도서관.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던 기억이 난다. 숙제가 끝나면 함께 도서관을 찾은 친구나 동생과 지하 매점에 들러 컵라면을 홀짝였다. 식사 후에는 다시 자료실로 올라와 서가에 꽂힌 서명들을 훑은 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었다. 키에 비해 높은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독서를 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져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그럴 때면 꼿꼿이 앉아 두꺼운 책을 읽는 옆 사람을 곁눈질로 구경하며 감탄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사설 독서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막힌 책상 위는 공부하며 몽상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사준 책이 많았고, 숙제는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공공도서관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반수를 준비하면서부터 공공 도서관을 찾았다. 수능 공부는 뒷전에 두고 폴 오스터, 김영하,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빌려 사설 독서실에서 열심히 읽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교내 도서관을 이용했다. 공공도서관에 비해 쾌적한 환경과 깨끗한 장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6년부터 3년 동안 모교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사서 직원이 도서관에 들여올 책들을 선택하고 주문하여 신간 도서가 입고되면, 장서에 도장을 찍고 도난방지 마그네틱을 심은 뒤 바코드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청구기호별로 분류하는 일이 내 담당이었다.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보다 빨리 신간도서를 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CDTAPE를 제외한 별책부록들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졸업 후 짧은 사회생활을 마치고부터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공공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정독보다는 발췌독을 통해 얕고 넓은 호기심을 채웠다. 심리학과 철학 관련 도서를 찾아 읽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내게 도움이 되는 문장이 나오면 수첩에 옮겨 적어 두었다. (독서 일기를 쓰지 않은 건 후회가 된다.)

몸이 아프고 난독증이 찾아오면서부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를 이용했다. 주로 소설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었다.

재취업을 앞둔 요즘은 다시 공공도서관에 들러 토익 공부를 한다. 조용한 열람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치열한 열기가 느껴진다. 메르스로 에어컨 가동이 중단된 오늘도 열람실은 만석이다.

주부가 장을 보러 마트에 들르듯 나는 도서관에 간다. 엄마는 날보고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 게 누구냐며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나는 도서관을 찾는다. 젊은 날, 갈팡질팡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꾸준히 도서관에 들락거린 걸 보면 애초에 사서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공부나 할 걸. 한때 내 꿈은 공공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사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쉽고도 무척이나 어려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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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

from 글쓰기 2015. 2. 5. 19:25




출판사 편집자 모집 공고를 보고 무작정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어리석게도 원서를 내고 난 뒤에서야 편집자의 일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빌려본 책이 편집자란 무엇인가. 제목 그대로 편집자의 모든 일을 다룬 책이다.


대부분의 전문직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편집자는 장인(匠人) 정신이 요구되는 직업 중 하나다. 출판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수많은 원고를 읽어야함은 물론이고, 출판이 결정된 순간부터 손익을 예측하고, 책의 구성을 책임지며,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홍보에 주력하며 독자와 소통해야 한다. 단지 책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하기에는 버거운 직업이다. 작가와 달리 책 밖으로 쉽게 드러나는 직업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책을 보면 느낄 뿌듯함은 산고를 치른 여인이 아이를 보는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물며 그 책이 독자의 큰 사랑을 받았을 때의 기분이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국내 편집자 5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뛰어난 편집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편집자의 전문적인 능력으로는 첫째가 원고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었으며, 둘째로는 문장력이었다. 편집자의 필요 덕목으로는 강인한 체력이라는 결과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세심함이 편집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교정이나 교열을 볼 때에도 물론이거니와 저자, 편집장, 발행인, 디자이너, 독자와 끊임없이 교류하려면 대인관계에서의 세심함 역시 필요조건일 것이다.


저자가 뒷부분에서 출판의 미래에 대해 제언한 내용도 흥미롭다. 검색 엔진이 차례나 각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도 편집자의 역할은 대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기 위해 콘텐츠를 재편집하는 편집자의 역할은 새롭게 요구될 것이라고 한다. 온라인 환경에서 양질의 저자를 선별하는 법, 창작과 편집 그리고 독서의 과정을 어떻게 디지털 환경에서 공유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 역시 충분히 생각해볼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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