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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50. 옛날엔 종종 했지만 요즘은 더 이상 하지 않는 일 2016.11.07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손등에 내리찍는 상상을 한다. 나는 연필을 깎고 또 깎아 예리하게 만든 다음 양 손을 책상위에 놓고 손가락 틈 사이로 왔다갔다 빠르게 연필을 내리꽂는다. 오른팔에 힘을 줄수록 왼손을 향한 연필의 동작에 긴장이 더해진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손가락 위에 연필심이 박히거나 피가 나지만 그 고통이 싫지 않다. 외갓집에 들를 때면 외삼촌의 방에 들어가 그가 그린 도면의 모서리에 라이터의 불꽃을 댄다. 도면의 여백이 안쪽으로 말리며 까만 재를 흩날린다. 나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을 끄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삼촌의 방을 나온다. 모든 불이 꺼진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 들를 때면 누군가 목을 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문을 열곤 했다. 늘 그렇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은 무료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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