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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년 9월 12일의 일기 2015.09.13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교 도서관에 들러 예치금 반환 청구서를 내고,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얼마 전 사장이 머리는 언제부터 기른 거야?”라고 물어본 게 마음에 걸려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길이에 세팅 펌을 해서 부스스한 모습을 한 사원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장 마음에 들 리 없다. 머리를 자르고 혜화역 방송통신대학교로 향했다. 내가 속한 시민단체 청년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날의 주제는 임금피크제였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임금피크제가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토론했다. 중견기업 비정규직으로 2년 가까이 일한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오늘 주제로 할 말이 많다고 말해놓고는 정작 토론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상식이 부족한 탓이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토론에서는 임금피크제 이면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을 꺼냈다. 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부터 비례대표제문제까지. 핵심은 재벌개혁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말이 나왔다. 축적된 사내유보금만 풀어도 실업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내유보금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다. 대안으로 사내유보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일한 비율로 세금을 내게 하여 그 돈을 풀어 기본소득을 높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에 참여하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 다음 달 주제는 스펙인데 내가 발제를 맡았다. 취업준비생으로 많은 시간을 버린 나지만, 요즘 취업시장에서 원하는 스펙이 무엇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 토론이 끝나고 친구 J를 만나기 위해 합정역에 있는 빨간책방 카페로 향했다. 사실 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열렬한 팬이다. 그가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스튜디오가 속한 빨간책방 카페를 한 번도 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로서 해결된 셈이다. 2층에는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이 가득해서 3층으로 자리를 옮겨 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J는 나를 보자마자 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어라고 했다. J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년 전이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새 몸무게가 적어도 10kg 이상은 찐 셈이니. 토론을 마치고 살짝 상기된 나는 J에게 토론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가 INFP라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아버지를 주제로도 한참을 말했다. 카페가 답답했던 J가 걷자고 해서 홍대 거리까지 무작정 걸었다. 토요일의 홍대 거리는 과장을 보태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길거리에 즐비한 상점을 지나 한 SPA 상점에 들러 옷을 구경했다. 한 철 지나면 버려질 옷들이 많았다. 상점을 나와 또 다른 SPA 매장에 들러 J가 가을옷을 입어보고 구매할 동안 나는 회사에 입고 갈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옷은 가격이 비쌌다. 둘은 매장을 빠져나와 지하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새 책 냄새와 방향제 냄새가 섞여 어지러웠다. 서점 입구 매대에 깔린 책을 두루 살폈다. J는 자신이 좋아하는 교수의 책을 찾고 나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찾았으나 내 것은 재고가 없었다. 나는 2015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집어들고 김숨의 뿌리이야기를 읽어나갔다. 뿌리를 박제하려는 남자의 모습에서 미술을 전공한 회사 선배 생각이 났다. 나도 참 어지간히 빠진 모양이다. 뿌리이야기가 몇 페이지에서 끝나는지 확인한지 이십 여분이 지나자 J가 나가자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정신없는 홍대 거리를 빠져나와 홍대 입구 역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빨간책방에서 시킨, 먹다 남은 질겅거리며 이제부터 꼭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한 나였다. 선배 생각은 끊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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