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일생에서 기억에 남는 밥상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쓴 글은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 우리 집 밥상머리에서 욕지거리가 오가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글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의 주식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아파트를 팔고 월세가 저렴한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당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와 채 삼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공동주택이었다. 다섯명이 살기에는 너무나 좁았던 그 집에서 나는 아버지의 무수한 욕지거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어느날 아침이었나 보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나와 여동생, 아버지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화를 냈고, 쌍시옷이 들어가는 말이 떠다녔다. 여동생은 밥숟가락을 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피했고 나는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향해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던졌다. 무거운 물건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족 중 누구도 한 번 성이 난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모래가 된 밥을 우물거리며 지옥 같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했던 욕은 악마같은 년, 악랄한 년, 너희들은 저주를 받을거라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아버지는 영업을 하고 사람을 상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밉지도, 가엾지도 않다. 하지만 왜 꼭 밥상머리에서 가족들을 향해 이유 없는 욕을 퍼부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압도적인 무언가가 아버지를 눌러서 화가 삐져나온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한동안 밥을 빨리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 무렵부터 생긴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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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5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10. 5. 07:51

이 글을 쓰는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그만두네 마네 하면서도 여태껏 다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감정보다 인간적인 유대감 비슷한 그런 감정이 든다.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내가 회사 그만둬도 알고 지내고 싶다, 친하게 지내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만두지 말고 짤릴 때까지 걍 다녀, 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제밤에 여동생과 부대찌개를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커피 때문인지 잠이 안와서 밤을 홀딱 새버렸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회사 생각이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부터 부장님이 병가다. 당분간 사장이 나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텐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바보같이 또 긴장해서 지시 사항을 놓칠까봐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다. (좋아하는 선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느낀 점인데 확실히 병에 걸린 후부터 머리가 예전만큼 팽팽 돌아가질 않는다. 책을 읽어도 수박 겉핥는 기분... 예전에는 책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정류장을 놓칠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는데, 몇 년 사이에 책읽기가 어려워졌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순발력이 떨어졌고. P사에 다닌 이후 확실히 내가 변하긴 변했다. (이 점을 친구 지혜가 지적해주기도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주변이 사라지고 자기 표현이 줄었다. 회사 선배가 날더러 농담으로 우울증(환자)이라고 불렀는데 발끈해버렸다. 날더러 정색한다고 중얼거리더라. 그 사람은 실제로 내가 아침마다 항우울제를 먹는 환자라는 걸 모를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상위그룹에 속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인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따라가지 못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저 허허 웃곤 한다. 내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났는지 모르겠다. 취미로 수학 문제를 풀다보면 머리가 좋아질까? 남은 몇 십년을 이렇게 둔한 머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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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1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9. 21. 19:52

살을 빼려고 노력중인데, 잘 안 된다. 요즘 들어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는 게 마음에 두고 있던 회사 선배 때문이다.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보면 볼수록 내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 같아서다. 아니, 어쩌면 내 탓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에도 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운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단 둘이 있을 때에도 나는 말없이 일을 하거나 묵묵히 서 있을 뿐이고, 선배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둘 중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친하게 알고 지내고 싶은데. 회사에서 부장님과 선배가 잡담을 나눌 때에도 나는 적당한 리액션을 찾지 못해 듣기만 한다. 생각할수록 바보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바보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선배 생각부터 한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짝사랑도 이정도면 중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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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모교 도서관에 들러 예치금 반환 청구서를 내고,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얼마 전 사장이 머리는 언제부터 기른 거야?”라고 물어본 게 마음에 걸려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길이에 세팅 펌을 해서 부스스한 모습을 한 사원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장 마음에 들 리 없다. 머리를 자르고 혜화역 방송통신대학교로 향했다. 내가 속한 시민단체 청년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날의 주제는 임금피크제였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임금피크제가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토론했다. 중견기업 비정규직으로 2년 가까이 일한 나는, 자기소개 시간에 오늘 주제로 할 말이 많다고 말해놓고는 정작 토론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상식이 부족한 탓이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토론에서는 임금피크제 이면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을 꺼냈다. 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부터 비례대표제문제까지. 핵심은 재벌개혁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말이 나왔다. 축적된 사내유보금만 풀어도 실업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내유보금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다. 대안으로 사내유보금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일한 비율로 세금을 내게 하여 그 돈을 풀어 기본소득을 높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에 참여하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 다음 달 주제는 스펙인데 내가 발제를 맡았다. 취업준비생으로 많은 시간을 버린 나지만, 요즘 취업시장에서 원하는 스펙이 무엇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다. 토론이 끝나고 친구 J를 만나기 위해 합정역에 있는 빨간책방 카페로 향했다. 사실 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열렬한 팬이다. 그가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스튜디오가 속한 빨간책방 카페를 한 번도 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로서 해결된 셈이다. 2층에는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이 가득해서 3층으로 자리를 옮겨 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J는 나를 보자마자 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어라고 했다. J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년 전이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새 몸무게가 적어도 10kg 이상은 찐 셈이니. 토론을 마치고 살짝 상기된 나는 J에게 토론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가 INFP라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아버지를 주제로도 한참을 말했다. 카페가 답답했던 J가 걷자고 해서 홍대 거리까지 무작정 걸었다. 토요일의 홍대 거리는 과장을 보태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길거리에 즐비한 상점을 지나 한 SPA 상점에 들러 옷을 구경했다. 한 철 지나면 버려질 옷들이 많았다. 상점을 나와 또 다른 SPA 매장에 들러 J가 가을옷을 입어보고 구매할 동안 나는 회사에 입고 갈 옷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옷은 가격이 비쌌다. 둘은 매장을 빠져나와 지하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새 책 냄새와 방향제 냄새가 섞여 어지러웠다. 서점 입구 매대에 깔린 책을 두루 살폈다. J는 자신이 좋아하는 교수의 책을 찾고 나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찾았으나 내 것은 재고가 없었다. 나는 2015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집어들고 김숨의 뿌리이야기를 읽어나갔다. 뿌리를 박제하려는 남자의 모습에서 미술을 전공한 회사 선배 생각이 났다. 나도 참 어지간히 빠진 모양이다. 뿌리이야기가 몇 페이지에서 끝나는지 확인한지 이십 여분이 지나자 J가 나가자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정신없는 홍대 거리를 빠져나와 홍대 입구 역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빨간책방에서 시킨, 먹다 남은 질겅거리며 이제부터 꼭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한 나였다. 선배 생각은 끊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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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9. 3. 17:06

잡지회사에 취업했다. 내가 원하는 분야의 글을 쓰는 곳이 아니지만 회계나 경리 업무에 비하면 훨씬 마음에 든다. 다만 박봉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수습 3개월 동안 급여의 70%만 지급받기로 했는데, 최저 시급으로 계산한 월급도 안 될 지경이다. 엄마는 박봉이라는 이유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일단 다녀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도 일단 다니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고.

첫날 기사를 쓰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짜깁기해버렸다. 전문 지식도 부족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오랫동안 글쓰기 연습을 하지 않은 탓이다. (, 나는 신경숙을 욕할 자격이 없다.) 글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결국 대표는 원글과 같은 홈페이지에 실린 연락처를 보고 전화로 해결하려는 듯 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왜 남의 글을 베껴쓰는가. 앎의 부족보다도 나만의 생각과 주관이 없는 탓이 크다. 일을 하면서 짜집기를 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많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야근을 하는 한이 있어도 짜집기는 하지 말자. 부끄럽지만 이 글은 공개로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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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8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8. 28. 17:55

계획이 틀어졌다. 어제 면접을 본 청소년수련관에서 나를 예비합격자로 뽑은 것이다. 합격자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내가 채용될리는 없고.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합격할 줄 알고 자신만만했는데 무엇 때문에 떨어진 것일까. 작가가 되고 싶다고 괜히 말했나보다.

면접에 떨어지고 충격을 받아 오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책도 제대로 못 읽고 누워만 있었다. 나란 사람은 왜 이렇게 게으른 것일까. 돈을 벌어야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하다보니 일자리 찾기가 버겁다. 세상 일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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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5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8. 25. 14:40

요즘 들어 독자가 아닌 작가의 관점에서 글을 읽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 글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끌리는 글은 솔직한 자기 고백형 글이다. 내가 솔직한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놈의 자기 검열 때문이다. 최근 알게 된 어느 블로거의 일기를 읽고 카타르시스 비슷한 걸 느꼈다. 내가 그라면 숨기고 싶었을 내용까지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문체로 담담히 적었더라. 백지만 보면 불편해하는 나의 문제는 내 글이 솔직하지 않은 데 있는 것 같다.

요즘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취업을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도 알았다고만 대답하고 띄엄띄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며칠 전 일기에서도 썼듯이 관심가는 이성이 생겼는데 그를 따라 나도 평생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삶에서 돈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왔던 나였는데, 정작 홀로서기를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속한 시민단체에서 알게 된 분의 소개로 청소년수련관 단기 계약직에 지원했다. 한달에 150만원을 벌게 되니 네 달이면 600만원이다. 이 돈으로 내년 2월까지 토익을 최소 800점 이상으로 만들어놓고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알바를 한 게 후회된다. 분명 얻은 게 있겠지만 내겐 기회비용이 더 컸던 것 같다. (공부란 때가 있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돈 걱정만 없다면 평생 공부만 하며 살고 싶다. 지금이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도 공부에 쉬이 집중하기 어렵다. 고민이 많아서다.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밥벌이를 못하고 있는 내 상황이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지만 이 블로그에 비밀글로 적었듯이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다독이 중요하다는 말에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책만 읽고 있다. 글읽기는 쉬워졌는데 글쓰기는 아직도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아마 나만의 주관 없이 글을 읽기 때문에 남는 게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공부와 작가가 되는 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뭐가 되었든 경제활동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선택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취업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해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곪아터진 나. 처음부터 천천히 원하는 바를 향해 노력했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거다.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서도. 예전 남자친구와 출산에 대한 문제로 싸웠던 게 생각난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남자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나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게 싫었고 내 성격과 비슷한 존재가 태어난다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기도 하고, 남편 될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쪽이다. 남자친구도 없는데 이런 생각하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일기가 되어버렸다. 나를 솔직히 비워내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글쓰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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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from 기록 2014. 11. 1. 18:55

참으로 오랜만에 이 블로그에 들렀다. 2005년 처음으로 티스토리(예전에는 태터툴즈라고 불렀다.)를 사용한 기억이 난다. 블로그를 시작한 때부터 9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이 블로그에 쓴 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것도 내 소중한 과거이기에 남겨두기로 했다. 다시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일기를 쓰면서 나를 치유하고 싶어서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인생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다보면 부지불식간에 원인도 밝혀지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네이버 블로그에 끄적인 글은 천천히 옮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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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0일 토요일

from 기록 2009. 6. 21. 10:30
난 눈치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와 비슷한 종족을 알아보는 '감'은 있다. 어제 아는 언니를 만났다. 2년동안 알아왔지만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난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하지만 뭔가 느낌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굉장히 우울해보였다. 그냥 나쁜 일이 있어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 왠지 나랑 비슷한 이유로 우울해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밥을 먹을때까지는 서로 별 말 없이 있다가 커피샵에서 언니는 결국 울고 말았다. 그럼 내가 그 맘 알지, 나도 그랬어라는 말로 맞장구를 쳤는데 그냥 내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 경험을 온전하게 말하지 않고 다 그런거지 뭐 하는 식으로 둘러싸서 위로를 했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숨기는 것도 굉장히 나쁜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작년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이 언니도 세상 살아가기 힘든 타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도 내가 이 언니를 바라보는 느낌이겠지. 나와 비슷한 사람의 불행을 보며 나의 단점을 파악하다니. 역시 나도 이기적인 사람.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다. 아니 불편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진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는데, 선량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 말을 못한 것 같다. 내 자신이 스스로 역겨워졌다. 타인도 생각하고 배려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니, 씁쓸하고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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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8일

from 기록 2009. 6. 18. 14:28

손은 또다시 덜덜 떨리고 무서워 미치겠다. 공부도 안되고, 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글을 읽고 있다. 별 것 아닌 일에 엄청나게 긴장하게 된다. 안절부절 어디를 가도 불안하니 친구들도 못만나고 잠도 못자고 공부도 못하고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아 정말 미치겠다. 기분이 너무 안좋다. 요 며칠 내내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가 오늘은 갑자기 가슴이 뛰고 손이 떨려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간만에 빈 속에 커피 마셔서 그런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없고, 집중은 안돼고, 기분은 안좋고, 몸 상태도 안좋고, 즐거운 일을 떠올리려 해도 안될 뿐더러 안좋은 일만 생각나고.  아놔 이게 바로 PMS인가? 화나고 불안하고 가슴도 답답하고 진짜 미치고 돌아버리겠다. 사람들이 이래서 종교를 갖는건가? 불안하다 불안해 불교든 천주교든 이슬람교든-_- 종교 활동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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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결혼했다.

from 기록 2009. 6. 13. 17:20
십년지기 친구가 결혼했다. 나도 실감이 나질 않는데, 친구는 오죽할까. 결혼식에 가서 안면 있는 동창들도 만나고, 그냥 뭐하고 지내냐고 서로 안부 묻다 보니 어느새 결혼식도 끝나고 폐백도 끝났다. 초딩 때 부터 같은 동네에 같은 학원 다니고, 같은 연예인을 쫓아다니면서 철딱서니 없게 살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혼이라니!
성격은 나와 정 반대이지만, 나의 쪼잔한 면까지 이해해주는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인데. 뭔가 시원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남 걱정 할 처지가 아니란 건 나도 잘 알고 있다만.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 물 흐르듯이 잘.

결혼식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서 또 다른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열등감의 원천이 된 친구. 너무 완벽한 그녀! 물론 단 한번도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ㅋ 결혼식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조만간 만나자고 하긴 했는데, 이젠 내가 바빠서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 연락이 끊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팔 년 정도 되었나?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보니, 자꾸 동창들을 찾게 된다. 그래도 역시 동창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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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꼴보기 싫어!

from 기록 2009. 6. 11. 21:29

모든 사람들이 보기 싫어지는 때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요 며칠 동안 또 그런 때가 찾아왔는데, 이 시기가 오면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 일주일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라고 물어보기에 그냥 덤덤한 어조로 내가 한 잘못들과 실수들을 이야기했는데, 선생님한테 한 소리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본인이 겪은 힘든 일들을 제3자 바라보듯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마치 나를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냥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니까, 원래 그래왔으니까요. 라고 대답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그동안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고 있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항상 머리가 무겁고 뭘 해도 즐겁지가 않고,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생각들과 의심들이 많으니 한가지 일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던 것. 원인을 알았으면 고쳐야 할 텐데 결국 이 모든 게 '그래 다 내 탓이오'라고 응축해버리니. 정말 나도 답이 없는 인간이다. 이 끊을 수 없는 자학의 악순환이란..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인간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할 뿐. 도대체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잘해주는가?라는 간단하고도 심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앉아있자니, 이건 뭐 밑도 끝도 없는 삽질의 연속일 뿐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주위에 너무 벽을 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몇달 전에 본 철벽녀의 연애라는 명문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피식. 남들은 좋아하는 이성한테 벽을 친다던데,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인간들에게 벽을 치고 사는구나.


자기 긍정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 나도 안다. 하지만 태생이 이런걸 어찌하리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빵긋거리는 샤방한 캔디같은 여자들이 있다면, 어둠밖에 난 볼 수가 없어 소리낼 수도 없을 것 같아,라고 자학하는 나같은 여자도 있어야 밸런스가 맞지 않겠나. 폭식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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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탐색검사 결과

from 기록 2009. 6. 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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