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사랑

from 기록 2014. 11. 8. 18:43

주말에는 성당을 찾는다. 삶에는 분명 이성과 감성만으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느낀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걸 안다면 태만해 질 수 없다는 봉사자의 설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후회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점, 사랑했던 사람에게 속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점,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을 현실로 옮기지 못한 점, 타인에게 상처주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혔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에게 기쁨을 주고도 스스로 기쁘지 않다면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엄격했던 삶을 살아왔노라고 회고하는 봉사자의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이야기 같아서다. 재물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과거 카톨릭의 율법은 요즘 사람들에게 자신이나 일, 혹은 명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나는 내 자신의 노예로 살아왔다. 

며칠 전 받은 상담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느꼈다. ‘강점 확인표’에 수록된 60개 문항 중 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문항에 표시를 하는데, 상담 선생님이 내게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항목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중국어 발음은 유창하지만 독해와 쓰기가 기초 수준이라고 답했다. 상담 선생님은 본인 역시 기초적인 외국어 실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문항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장점에게조차 인색했다. 완벽주의 때문이다.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완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건 아니다. 아나운서도 국어사전의 모든 낱말을 꿰고 있지는 않다. 완벽이라는 건 누군가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동안 나만의 높은 기준을 만들고, 이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괴롭혀왔음을 깨달았다. 남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 왜 스스로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가졌을까. 남들보다 특별하고 우월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에서 출발한 선행은 교만에 가깝다. 교리 수업에서 성경을 읽고 자신의 교만함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나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고 신을 닮으려 했던 나의 교만을 고백했다. 남들에게 내 것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날 교리 수업 시간에 카톨릭의 ‘사랑’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사랑은 측은지심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쓴 책에 ‘꿈보다 연민’이라는 글귀를 적어 사인해주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떠올랐다.) 고통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사랑한다 말하지 말지어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라. (사랑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사랑을 실천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사랑이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2013/11/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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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빼빼로 데이

from 기록 2014. 11. 8. 18:43

1998 11 11열다섯 살의 나는 첫사랑에게 고백 후 보기 좋게 차였다상대는 같은 보습 학원에 다니는다소 수줍은 성격의 평범한 남학생이었다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고학원에서 내 소식은 곧 화제가 되었다소문이 부담스러웠지만평소와 달리 내게 쏠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학원에 갈 때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며 외모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렸다. 학원 여교사들은 그 아이의 어떤 면이 좋냐고 물었고나는 ‘그냥 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럴때면 단발머리 영어 강사가 루주를 덧바른 입술을 뻐끔거리며 콤팩트 파우더 거울에 비친 내게 어이없다는 눈길을 던지곤 했다.

고백은 빼빼로 데이에 하는 거야쾌활한 성격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많던 친구의 조언이었다시내 번화가에 들러 선물 상자를 사고빼빼로와 장식물을 채워 넣었다그리고 11 11이미 여러 개의 빼빼로를 챙기고 누구와 사귈지 고민하던 친구는 우물쭈물한 나를 학원 봉고차 안으로 떠밀었다통학차를 둘러싼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말아 휘파람을 불어댔고여자 아이들은 팔짱을 낀 채 무리지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선물 상자를 건네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 라고 답하던 상대방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한다얼굴이 화끈거렸다분노수치심자기 연민 따위의 감정이 밀려왔다지가 뭔데 날 차다음날 학원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고민했다학원을 옮겨야 하나내가 차였다는 소문이 퍼졌을 텐데 쪽팔려서 학원은 어떻게 다니지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반성이 빠르다는 점이다.) 나는 그 아이보다 이성을 향한 설레는 내 감정을 더 좋아했구나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고백 후 결과가 어찌됐든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원을 몇 달 더 다닌 후 이사를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첫사랑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2013 11즐겨 찾는 온라인 쇼핑몰 비밀번호를 바꾸다가 1998년 빼빼로 데이를 떠올렸다. 1998년 겨울부터 2011년 봄까지 내 모든 웹 사이트 계정, 자물쇠통장휴대폰 잠금 비밀번호는 그 아이의 집 전화번호 끝 네 자리였다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의 전화번호 뒷자리를 비밀번호로 쓰는 습관이 생겼다.

대희야잘 지내니?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 때 빼빼로는 그냥 받아주지 그랬니.

2013/11/27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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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from 기록 2014. 11. 8. 18:42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

2013/11/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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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번째 생일

from 비공개 2014. 11. 8. 18:41

11월 28일은 내 생일이었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서른되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서른이라니... 단어조차 낯설다. 

 

친구로부터 플라톤의 '향연'을 선물받았다.

난 책을 선물받으면 참 기분이 좋더라

 


 

2013/11/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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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남자친구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내게 등을 보이고 선 그는 여자친구로 예상되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2013/11/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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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원이세요.

from 기록 2014. 11. 8. 18:40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오며 편의점에 들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십대 여성 둘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선임 아르바이트생이 신입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주던 참이었다. 쿠키를 건네고 계산을 하는데 신입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어색하고도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540원이세요.” 저, 돈에 존칭을 붙일 수 없습니다. 손님을 깍듯이 대하려는 선의에서 비롯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라 이런 부분에 민감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알려드렸으니 그쪽에서 고마워하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려던 찰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의 지식을 드러냄은 나의 교만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상대방의 말실수가 듣기 괴롭기 때문이다. 나 편하자고 남의 실수를 다른 이 앞에서 드러내는 게 옳은가? 이런 방식으로 일을 갓 시작한 사람의 자신감을 떨어뜨려야 하나?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아무 말 없이 쿠키를 들고 나왔다. 오늘 하루 이 사소한 일을 곱씹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2013/12/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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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from 기록 2014. 11. 8. 18:39
며칠을 자취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러다 욕창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무작정 자취방을 나와 학교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어제 저녁 6시부터 오늘 오후 1시까지, 그러니까 총 열 아홉 시간을 모교에서 보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데 두 시간, 멍하니 앉아 있는 데에 세 시간, 스마트폰으로 웹서핑 세 시간, 나머지는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읽고,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책을 두 페이지 이상 읽기가 힘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도서관 서가를 한 바퀴 돌며 책등을 훑었다. ‘읽기곤란에서 난독증까지’라는 책을 대출하여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머리말까지밖에 읽을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와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을 읽었다. 다시 책을 펼쳤지만 난독증은 여전하다. 노트를 꺼내 젊은 여자를 그렸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친김에 머릿속에 들어찬 잡념들을 모조리 적었다. 쓰면 쓸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늘 그렇듯이 결론은 없고 쓸데없는 분석만 가득하다. 그래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낙서한 종이를 버리지 못하고 파우치에 접어 넣었다. 파우치는 이전에 끄적인 낙서와 메모로 이미 부풀어 있다. 책을 읽지 못할 바에 쓰기라도 하자. 다른 노트를 펴고 마르코 복음서를 필사했다. 어느새 창 밖이 환하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일출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몸은 노곤하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하다. 지금 내 꼴은 동네 구립 도서관 1층에서 후줄근한 차림새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대는 고시생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이제는 자학에 쾌감을 느끼는 경지가 되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져서야 학교를 나왔다. 끼니를 거르고 씻지 못해 꾀죄죄했지만 몸은 가벼웠고,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상쾌했다. - 2013년 11월 20일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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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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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from 기록 2014. 11. 8. 18:38
도저히 객관적으로 감상할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차마 글로 풀어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선이가 나선형의 벽지 무늬를 응시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영화를 같이 본 이는 등장인물 중 제일가는 악인으로 목사를 꼽았다. 이하동문이다.

2013/12/0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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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ure

from 기록 2014. 11. 8. 18:37

 

 

 

 

 

2013/12/0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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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르는 손톱

from 기록 2014. 11. 8. 18:36

다음부터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말하는 시인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시인은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나도 다시 태어나면 시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던 것 같다.

2013/12/0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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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from 기록 2014. 11. 8. 18:35

철학 강의를 듣고 성당에 나갔더니 평소와 달리 미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2013/12/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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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춘기의 주된 증상은 무기력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집-학원만을 오가며 숙제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평일은 학원 숙제, 주말에는 과외 숙제를 마치기에도 벅찼다. 혼자만의 시간조차 부족했던 나는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상에 엎드려 꿈속을 헤맸다. 열일곱이 되었을 때, 이런 나를 무리에 끼워준 친구들이 있었다. 지혜는 내가 속한 그룹의 일원이었다. 지혜는 조금 특이한 친구였다. 당시 나는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대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혜는 판단이 어려운 아이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밴드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아이들이 풍기는 과한 매니아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모범생 특유의 오만함이 없었다. 저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단점이 있을 것이다. 유쾌한 지혜의 행동은 한없이 삐딱한 내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보였다. 지혜는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다가도 갑자기 말이 끊기는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면 눈을 위로 치켜뜨며 엉뚱한 표정을 짓거나 본인의 신체 콤플렉스를 소재로 삼아 분위기를 띄우던 아이였다. 농담이라도 타인의 단점을 웃음거리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손은 작지만 손 글씨가 정갈한 지혜와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바빴고, 지혜는 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보였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문학 수준별 이동학습 시간에 지혜와 짝이 된 것이다. 나는 특유의 무신경함을 가장한 채 옆자리에 앉은 지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집중하며, 필기를 하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었다. 친하다는 핑계로 내게 쓸데없는 잡담을 거는 무례함은 없었다.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본인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하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는 나는 지혜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접고 끝없는 과제와 퀴즈에 매달렸다. 2002년 2월, 종업식을 앞두고 누군가 카메라를 가져왔다. 인화한 사진을 돌려보는데, 사진 속의 나는 평소와 다르게 환히 웃고 있었다. 친구들은 실물보다 사진이 낫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지혜가 정색을 하며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통통해서 그렇지 항아리 본판이 원래 이뻐. 이마도 나와 다르게 동그랗고 볼록하잖아. 콧대도 높은 편이고, 얼굴도 좌우 대칭이 맞지. 공부도 빠지지 않지, 팔방미인이야. 항아리, 내가 널 얼마나 부러워했다구." 민망함에 나는 지혜의 말을 끊었던 것 같다. 민망함보다 가슴이 뛰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거다. 열일곱의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서른이 되면 실비아처럼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지독히 부정적인 아이였다. 이런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왜 진작 친해지지 못했을까. 십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부럽다고 고백하던 친구의 얼굴 표정, 순간의 느낌, 교실의 분위기는 기억에 또렷하다. 내가 농담으로라도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13/12/0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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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마감음악회

from 기록 2014. 11. 8. 18:35

봉사단체에서 주최한 음악회에 다녀왔다. 밴드가 80년대부터 90년대 유명곡을 연주하면, 관객들은 주어진 테마에 따른 기억을 떠올리며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공연이라기보다 토크쇼에 가까운 자리였다. 진행자는 정혜신씨였는데 낯이 익다 싶어 검색해보니 마인드 프리즘 대표였다. 한비야씨와 비슷한 외모다. 정혜신씨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가늘게 떠는 목소리로 ‘즐거운 나의 집’을 부를 때,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저절로 몸이 얼어버리는 나는 공연 중반까지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내 일생 잊지 못할 다섯 사람을 꼽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내가 잊지 못할 다섯 사람으로 나, 엄마, 헤어진 남자친구, 아빠, 하느님을 적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모두 포함된 잊지 못할 다섯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격려 문자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는 “OO야, 네 감정 무시하지 말고 네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돼. 지금도 넌 충분히 착한 사람이야. 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네가 원하는 일 하나씩 이루어가길 바래”였다. 지나치게 사람들에게 맞춰주다보니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주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오히려 나를 우습게 아는 사람도 있었다. 싫은 소리는 못하고 끙끙 앓다가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었더니 요즘 살이 많이 쪘다.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는데,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내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위로 향해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기분이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일을 사과했다.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위로보다 충고를 내세웠다. 정밀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엄마가 곧 죽을 사람처럼 여기고 말하는 모습이 답답해서다. 엄마는 다행히 어제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보였다. 나도 차츰 나아지겠지.

 

2013/12/0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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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주일 미사

from 기록 2014. 11. 8. 18:34

나는 성당에서조차 한 쪽 발만을 걸친 사람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다.

미사 시간에 기도문을 외우는데 눈물이 났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나의 죄 때문이다. 죄를 사하여 달라고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2013/12/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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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 감자

박완서 - 황혼

박태원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나도향 - 물레방아

 

어제 들은 한국 문학들이다. 난독증 때문에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인물을 둘러싼 정경이나 어조를 듣는다는 건 독서와 또 다른 체험이다. <물레방아>에서 이방원의 아내 역할을 맡은 여자 성우의 교태스러운 목소리를 듣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나도향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보습학원 면접에서 국어 강사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물었고, 나는 김동인의 <감자>를 꼽았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구보는 사랑스럽고, 박태원의 문체도 좋다. 내가 사랑하게 될 소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박완서의 글은 맛깔스러우면서도 여성 독자들로 하여금 묘하게 움찔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늙은 여자'라는 단어가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감상하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2013/12/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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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from 기록 2014. 11. 8. 18:33
지나치게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조심해야한다. 인사성 밝은 원룸 이웃 남학생이 포르노 신음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오도록 만드는 인간인 줄 누가 알았겠나

2013/12/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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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실습

http://211.43.206.85/n_Lecture/?LessonIdx=nhLee01&LessonPart=novel



 

* 출생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시기

1.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진주 목걸이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2.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 부평구)다.

3. 내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인천 부평구)에서 지냈다.

4.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세 살 쯤 되었을 때 엄마 등 뒤에 업혀 장롱을 바라보며 저게 장롱인 걸 알겠는데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다.

5. 어린 시절 가장 기뻤던 일은 (아무 걱정없이 여동생과 말장난하며 놀던 기억, 사촌 언니들로부터 체스를 배운 기억)이다.

6. 가장 슬펐던 일은 (동화 구연 대회에 나가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암기한 내용을 말하지 못하고 집에서 동화책을 공수해 와 책을 펼치고 청중들 앞에서 읽었던 굴욕 사건)이다.

7.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따랐던 사람은 가족 중 (아빠)였다.

8. 그 사람의 성격은 한 마디로 (친구 같으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9. 어린 시절 나는 (얌전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10.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밀크 카라멜)이었다.

11.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물건은 (여동생이 탐내는 물건)이었다.

12.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끝말잇기와 스무고개)였다.

13.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TV가 있고 온기가 도는 안방)이었다.

14. 어린 시절 내겐 특이한 버릇으로 (방에 있는 액자의 구석이나 벽지의 문양을 골똘히 응시하며 특정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까지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15. 어린 시절 나는 동화책 중 (공주인지 선녀인지 모를 여자가 남자 주인공이 구해온 붉은 열매를 먹고 나서 상태가 좋아졌다는 내용, 6번 동화 구연 대회에서 발표했던) 이야기를 좋아했다.

16. 어린 시절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똑똑한 아이)가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17. 어린 시절 나는 자라서 (간호사,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다.)

18.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착)하다고 칭찬하셨다.

19.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내가 (여동생을 돌보지 않고 둘이 자주 싸운다고) 꾸중하셨다.

 

 

 

* 초등학교 입학 후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의 시기

1. 나는 (1992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2. 초등학교의 첫 기억은 (이분단 앞줄에 앉아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선생님 말씀대로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던 기억)이다.

3. 1학년 때 첫 짝꿍은 (첫 짝꿍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부를 잘 하던 남자 아이)였다.

4.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젊은 미혼 여성)이었다.

5. 그 선생님의 특징은 (우리 집 근처에 살았고, 다소 깐깐한) 사람이었다.

6. 초등학생이었을 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쓰기 교과서에 습자지를 덧대어 한글 베껴쓰기 과제를 하던 중 획이 뜻대로 반듯하게 그려지지 않자 나는 성질을 내며 몇 번이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국 습자지가 찢어졌고,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과 면담을 했던) 일이다.

7.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는 (없다. 학년마다 친했던 친구가 달랐다. 그나마 SMI, HJS과 친했다.)

8. 그 친구는 내게 (손글씨를 예쁘게 쓰도록) 영향을 준 것 같다. - SMI

9. 내가 가장 잘했던 과목은 (국어)였다.

10.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인 이수경 혹은 김수경) 선생님이다. (성이 기억나지 않는다.)

11. 좋아했던 까닭은 (반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12.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 중 내가 가장 싫어했던 선생님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13. 싫어했던 까닭은 (스승의 날, 대놓고 선물을 가져오라 말하고, 정박아였던 학우의 뺨을 때리며 화풀이하던 폭력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 공상에 관한 질문

14. 초등학생 때 나는 (나만의 신과 대화하거나 죽음)에 관한 공상을 많이 하곤 했다.

15.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우주소년단에서 내가 만든 물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일)은 자랑스럽다.

16.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엄마 뜻대로 학원 수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일)은 후회스럽다.

17.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국문과 교수 혹은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18. 그 시절 부모님의 나에 대한 기대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19. 그 때 (엄마와 나를 때리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지금도 후회가 된다.

20. 그 때 (학교에서 전교 대표로 두 명을 뽑아 대부분의 비용을 학교에서 책임지고 일본으로 견학을 보내주는 과정이 있었다. 내가 그 중 한명으로 선발되었는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때라 비행기 표값마저 지원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나보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 돈에 대한 분노, 치욕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남들보다 꽤 빨리, 어린 나이에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일본에 갈 수 있었다면) 지금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 과제

-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보고 느낀 것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써보자

- ‘나의 어린 시절은’하고 중얼거려보고 떠오르는 첫 기억을 생각해보자

 

2013/12/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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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권리가 있어

from 기록 2014. 11. 8. 18:32

 

 

 

2013/12/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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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pi

from 기록 2014. 11. 8. 18:31

2013년 최고의 영화였다. 처음으로 OST를 들었는데, 훌륭하다. 성가를 듣는 느낌이다. 오늘 마이클 센델의 정의 강연을 보는데,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더라.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

 

2013/12/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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