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교 도서관에서 밤을 샜다. 열람실이 조용하니 활자가 잘 읽힌다. 머리가 트이는 느낌. 학생들이 몰리기 전에 열람실에서 나왔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원룸에 도착하니 시끄러운 이웃들은 등교를 했는지 조용하다. 오늘은 편히 잠들 수 있겠구나.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흡족한 기분인지... 누군가 내게 조용한 공간을 제공해준다면 영혼까지 팔아버릴지도 ^^;
'2014/11'에 해당되는 글 272건
- 나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았다. 2014.11.08
- 정직한 몸 2014.11.08
- 내가 좋아하는 문장 - 1 2014.11.08
- 읽기의 어려움 2014.11.08
- 오묘한 순간들 2014.11.08
- 종교의 참의미 2014.11.08
- 내가 좋아하는 문장 - 2 2014.11.08
- 시간 관리 2014.11.08
- 면접 상담 종료 2014.11.08
- 교만과 사랑 2014.11.08
- 1998년 빼빼로 데이 2014.11.08
- 수요일 저녁 2014.11.08
- 스물아홉번째 생일 2014.11.08
- 헤어진 남자친구가 꿈에 등장하다. 2014.11.08
- 540원이세요. 2014.11.08
- 어떤 하루 2014.11.08
- 뾰족해도 괜찮아 멈추지만 않으면 돼 2014.11.08
- 사이비 2014.11.08
- pressure 2014.11.08
- 허공을 가르는 손톱 2014.11.08
마음이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배가 고프면 먹을거리를 찾고
요의가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화장실에 간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죽음은 가까이 있고
신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후회 없이 행동하며 살아가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새해 아침을 생각했다. 그 불쌍한 나비라도 내 앞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가 갈 길을 일러 준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
불안장애치료에 관한 책을 읽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의 내용을 살짝 비튼 글이 예문으로 실렸다.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산누에나방을 희생시킨다는 소제목과 함께... 이 문장을 처음 읽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어렸을 때 외갓집 대문 밖 나무에 붙은, 탈 번데기 상태의 나비에게 똑같은 짓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죄책감까지 똑같다. 데자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정말 멋진 문장이다.
2013/11/18 22:34
2013/11/20 14:11
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131119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11849.html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서 keane의 곡을 들었다.
Bedshaped를 듣는 순간, 그 때 그 시절의 익숙한 느낌이 밀려와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공감각'에 대한 글이다. 익숙한 저 느낌.... 내가 항상 궁금해하던 것.
살다보면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 느낌이 생각하지도 못한 지점에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소름끼치는 오묘한 순간들.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한...
표현력이 부족해서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런 느낌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었던가?
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여유가 된다면 뇌과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2013/11/20 14:27
[편완식이 만난 사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2013/11/22 10:27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을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근따근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 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 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 것은 분명하지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 섰는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
2002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이었을 때, 문학 교과서에 실린 이상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당시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은 지나치게 애국을 강조했다. 한국 문학은 입시를 위해 배운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상의 글을 읽는 순간, 문학의 순수미(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비슷한 걸 느꼈다. 사변적이고 모던한 느낌이 좋았다. 같은 독서실에 다니던 친구는 내가 이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집에 있던 이상 작품집을 선뜻 빌려주었고, 나는 귀가하자마자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안방 침대에 엎드려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긴 기억이 난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기둥서방’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당시 친구가 빌려준 책은 아직 우리집에 있다. 절교를 후 책을 돌려줄 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잘 관리하는 능력은 돈 관리와 사람 관리 등과 함께 자기관리의 핵심입니다. 시간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매일의 일과점검표와 분석표를 준비하였습니다. 주간 및 월간 점검표(30일)를 완성함으로써 한 달 동안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분석해 보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먼저 30일간 한 달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우선, 첫 번째 표인 <나의 하루 일과 점검표>는 모두 20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항목 당 최고 5점에서 최하 1점으로 기록합니다. 기상 시간의 경우 06:00에 기상할 것을 계획하여 06:00 전에 일어났다면 매우 잘함을, 5-10분 간격으로 (4-3-2-1점으로) 다음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기상 시간이 학교 버스를 놓치거나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아침 일과에 영향을 끼친 정도라면 1점 혹은 2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시한 20개의 항목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부모님의 의견을 반드시 기록핳여 매일 점검하면 효과가 큽니다.
일과 점검표의 이면에 있는 일과분석표는 주간, 월간 분석표와 연계된 것입니다. 하루 일과를 3S로 보고 잠(SLEEPING), 공부(STUDY), 생활(SURVIVE)에 사용한 시간을 분석합니다. 하루 24시간은 30분 간격으로 나누면 48 UNIT이 됩니다. 각 UNIT 별로 잘하면 2점에서 중간 1점, 못하였으면 0점을 체크합니다. 잠을 잘 때도 숙면을 하였으면 2점이 됩니다. 이론적응로 모든 일과를 완벽하게 진행하면 96점이 되는데 4점의 빈 곳은 선행(착한 행동 한 번에 1점을 주어 4번 이상이면 4점)으로 채워서 100점 만점을 받게 됩니다. 이를 시각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형광펜을 사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잠은 하늘색으로, 공부는 녹색을, 생활은 핑크색을 사용하여 2점 만점은 칸은 가득 채우고, 1점은 반만, 0점은 색칠을 하지 않습니다. 통계에서는 매일 각 영역별 시간을 합하면 됩니다. 일주일간의 기록을 모아서 주간점검표에 기록합니다. 한 주간 동안 잠을 잔 시간과 공부, 생활에 사용한 시간의 합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잠을 잔 시간과 공부, 생활에 사용한 시간의 합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다시 4주간의 기록을 모으고 이들의 기록을 더하여 30일간의 기록으로 월간 점검표를 완성합니다.
내면에 응축된 에너지가 많아 면접 상담 4회 차만에 인지 오류를 빨리 바로잡은 경우입니다. 저도 OO씨 덕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었어요. 상담은 제가 더 이상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고, OO씨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여 종료합니다. 그동안 OO씨는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마다 본인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사람 생각으로, 혹은 그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와 나쁜 감정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평생을 의존적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면 이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행동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아직도 감정이 많이 억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감정 카드 연습을 통한 개발을 꾸준히 해 나가세요.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문학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OO씨는 어린 시절 폭력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고로 감정을 눌러왔을 겁니다. 불안, 피해의식, 예민한 청력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완벽주의는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자신의 강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세요. 상담 초기 경직되어 있던 목과 어깨가 지금은 많이 풀어졌네요.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된 점 또한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동안 가정폭력과 아버지로부터의 피해의식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는 에너지를 외부로 풀어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제 상담은 한계가 있습니다. 취업 후 전문가를 찾아가 심도 깊은 유료 상담을 받아보세요. 힘들어지면 언제든 다시 연락 주세요.
심리상담 시 상담자와 내담자의 궁합도 중요하다. 학부생 때 모교 자치 기관에서 상담을 받으며 당시 나는 묘한 굴욕감을 느꼈다. 상담 선생님이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 있는 소파를 마다하고, 매 회기마다 본인 책상 앞으로 딱딱한 의자를 끌고 와 앉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상담 도중 눈을 쳐다보지 않고 서류 정리를 한다든가 휴대폰으로 사적인 전화를 받는 태도 역시 불쾌했다. push가 상담 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담 선생님의 고압적인 태도에 나는 표면적인 태도로 상담에 응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10월부터 1366에서 받기 시작한 면접 상담이 끝났다. 온, 오프라인에서 받았던 상담을 통틀어 최고였다. 상담 선생님의 탈권위적인 태도, 본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 나를 지지해주는 진심이 좋았다. 말하지 않은 내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고 몇 수 앞서 상담을 이끌어가는 모습 또한 놀라웠다. 나중에 꼭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013/11/23 14:04
주말에는 성당을 찾는다. 삶에는 분명 이성과 감성만으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느낀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걸 안다면 태만해 질 수 없다는 봉사자의 설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후회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점, 사랑했던 사람에게 속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점,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을 현실로 옮기지 못한 점, 타인에게 상처주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혔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에게 기쁨을 주고도 스스로 기쁘지 않다면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엄격했던 삶을 살아왔노라고 회고하는 봉사자의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이야기 같아서다. 재물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과거 카톨릭의 율법은 요즘 사람들에게 자신이나 일, 혹은 명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나는 내 자신의 노예로 살아왔다.
며칠 전 받은 상담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느꼈다. ‘강점 확인표’에 수록된 60개 문항 중 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문항에 표시를 하는데, 상담 선생님이 내게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항목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중국어 발음은 유창하지만 독해와 쓰기가 기초 수준이라고 답했다. 상담 선생님은 본인 역시 기초적인 외국어 실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문항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장점에게조차 인색했다. 완벽주의 때문이다. 중국 사람이라고 해서 완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건 아니다. 아나운서도 국어사전의 모든 낱말을 꿰고 있지는 않다. 완벽이라는 건 누군가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동안 나만의 높은 기준을 만들고, 이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괴롭혀왔음을 깨달았다. 남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 왜 스스로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가졌을까. 남들보다 특별하고 우월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에서 출발한 선행은 교만에 가깝다. 교리 수업에서 성경을 읽고 자신의 교만함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나는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고 신을 닮으려 했던 나의 교만을 고백했다. 남들에게 내 것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날 교리 수업 시간에 카톨릭의 ‘사랑’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사랑은 측은지심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쓴 책에 ‘꿈보다 연민’이라는 글귀를 적어 사인해주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떠올랐다.) 고통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사랑한다 말하지 말지어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라. (사랑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사랑을 실천하다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사랑이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1998년 11월 11일, 열다섯 살의 나는 첫사랑에게 고백 후 보기 좋게 차였다. 상대는 같은 보습 학원에 다니는, 다소 수줍은 성격의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고, 학원에서 내 소식은 곧 화제가 되었다. 소문이 부담스러웠지만, 평소와 달리 내게 쏠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학원에 갈 때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며 외모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렸다. 학원 여교사들은 그 아이의 어떤 면이 좋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다 좋아요.’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럴때면 단발머리 영어 강사가 루주를 덧바른 입술을 뻐끔거리며 콤팩트 파우더 거울에 비친 내게 어이없다는 눈길을 던지곤 했다.
고백은 빼빼로 데이에 하는 거야. 쾌활한 성격으로 이성에게 인기가 많던 친구의 조언이었다. 시내 번화가에 들러 선물 상자를 사고, 빼빼로와 장식물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11월 11일. 이미 여러 개의 빼빼로를 챙기고 누구와 사귈지 고민하던 친구는 우물쭈물한 나를 학원 봉고차 안으로 떠밀었다. 통학차를 둘러싼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말아 휘파람을 불어댔고, 여자 아이들은 팔짱을 낀 채 무리지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물 상자를 건네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 라고 답하던 상대방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한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노, 수치심, 자기 연민 따위의 감정이 밀려왔다. 지가 뭔데 날 차? 다음날 학원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고민했다. 학원을 옮겨야 하나? 내가 차였다는 소문이 퍼졌을 텐데 쪽팔려서 학원은 어떻게 다니지?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내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반성이 빠르다는 점이다.) 나는 그 아이보다 이성을 향한 설레는 내 감정을 더 좋아했구나.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고백 후 결과가 어찌됐든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원을 몇 달 더 다닌 후 이사를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2013년 11월, 즐겨 찾는 온라인 쇼핑몰 비밀번호를 바꾸다가 1998년 빼빼로 데이를 떠올렸다. 1998년 겨울부터 2011년 봄까지 내 모든 웹 사이트 계정, 자물쇠, 통장, 휴대폰 잠금 비밀번호는 그 아이의 집 전화번호 끝 네 자리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의 전화번호 뒷자리를 비밀번호로 쓰는 습관이 생겼다.
대희야, 잘 지내니?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 때 빼빼로는 그냥 받아주지 그랬니.
11월 28일은 내 생일이었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서른되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서른이라니... 단어조차 낯설다.
친구로부터 플라톤의 '향연'을 선물받았다.
난 책을 선물받으면 참 기분이 좋더라
2013/11/29 00:08
2013/11/29 15:50
2013/12/01 14:20
2013/12/02 00:19
다음부터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말하는 시인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시인은 사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나도 다시 태어나면 시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