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from 기록 2014. 11. 8. 18:35

철학 강의를 듣고 성당에 나갔더니 평소와 달리 미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2013/12/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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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춘기의 주된 증상은 무기력이었다. 당시 나는 학교-집-학원만을 오가며 숙제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평일은 학원 숙제, 주말에는 과외 숙제를 마치기에도 벅찼다. 혼자만의 시간조차 부족했던 나는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상에 엎드려 꿈속을 헤맸다. 열일곱이 되었을 때, 이런 나를 무리에 끼워준 친구들이 있었다. 지혜는 내가 속한 그룹의 일원이었다. 지혜는 조금 특이한 친구였다. 당시 나는 사람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대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혜는 판단이 어려운 아이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밴드를 좋아하면서도 그런 아이들이 풍기는 과한 매니아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모범생 특유의 오만함이 없었다. 저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단점이 있을 것이다. 유쾌한 지혜의 행동은 한없이 삐딱한 내게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보였다. 지혜는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다가도 갑자기 말이 끊기는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면 눈을 위로 치켜뜨며 엉뚱한 표정을 짓거나 본인의 신체 콤플렉스를 소재로 삼아 분위기를 띄우던 아이였다. 농담이라도 타인의 단점을 웃음거리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손은 작지만 손 글씨가 정갈한 지혜와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바빴고, 지혜는 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보였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문학 수준별 이동학습 시간에 지혜와 짝이 된 것이다. 나는 특유의 무신경함을 가장한 채 옆자리에 앉은 지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집중하며, 필기를 하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었다. 친하다는 핑계로 내게 쓸데없는 잡담을 거는 무례함은 없었다.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본인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하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는 나는 지혜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접고 끝없는 과제와 퀴즈에 매달렸다. 2002년 2월, 종업식을 앞두고 누군가 카메라를 가져왔다. 인화한 사진을 돌려보는데, 사진 속의 나는 평소와 다르게 환히 웃고 있었다. 친구들은 실물보다 사진이 낫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지혜가 정색을 하며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통통해서 그렇지 항아리 본판이 원래 이뻐. 이마도 나와 다르게 동그랗고 볼록하잖아. 콧대도 높은 편이고, 얼굴도 좌우 대칭이 맞지. 공부도 빠지지 않지, 팔방미인이야. 항아리, 내가 널 얼마나 부러워했다구." 민망함에 나는 지혜의 말을 끊었던 것 같다. 민망함보다 가슴이 뛰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거다. 열일곱의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서른이 되면 실비아처럼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지독히 부정적인 아이였다. 이런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왜 진작 친해지지 못했을까. 십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부럽다고 고백하던 친구의 얼굴 표정, 순간의 느낌, 교실의 분위기는 기억에 또렷하다. 내가 농담으로라도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13/12/0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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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마감음악회

from 기록 2014. 11. 8. 18:35

봉사단체에서 주최한 음악회에 다녀왔다. 밴드가 80년대부터 90년대 유명곡을 연주하면, 관객들은 주어진 테마에 따른 기억을 떠올리며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공연이라기보다 토크쇼에 가까운 자리였다. 진행자는 정혜신씨였는데 낯이 익다 싶어 검색해보니 마인드 프리즘 대표였다. 한비야씨와 비슷한 외모다. 정혜신씨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가늘게 떠는 목소리로 ‘즐거운 나의 집’을 부를 때,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저절로 몸이 얼어버리는 나는 공연 중반까지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내 일생 잊지 못할 다섯 사람을 꼽아보는 시간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내가 잊지 못할 다섯 사람으로 나, 엄마, 헤어진 남자친구, 아빠, 하느님을 적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모두 포함된 잊지 못할 다섯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격려 문자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는 “OO야, 네 감정 무시하지 말고 네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돼. 지금도 넌 충분히 착한 사람이야. 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네가 원하는 일 하나씩 이루어가길 바래”였다. 지나치게 사람들에게 맞춰주다보니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주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오히려 나를 우습게 아는 사람도 있었다. 싫은 소리는 못하고 끙끙 앓다가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었더니 요즘 살이 많이 쪘다.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는데,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내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위로 향해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기분이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일을 사과했다.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위로보다 충고를 내세웠다. 정밀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엄마가 곧 죽을 사람처럼 여기고 말하는 모습이 답답해서다. 엄마는 다행히 어제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보였다. 나도 차츰 나아지겠지.

 

2013/12/0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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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주일 미사

from 기록 2014. 11. 8. 18:34

나는 성당에서조차 한 쪽 발만을 걸친 사람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다.

미사 시간에 기도문을 외우는데 눈물이 났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나의 죄 때문이다. 죄를 사하여 달라고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2013/12/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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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 감자

박완서 - 황혼

박태원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나도향 - 물레방아

 

어제 들은 한국 문학들이다. 난독증 때문에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인물을 둘러싼 정경이나 어조를 듣는다는 건 독서와 또 다른 체험이다. <물레방아>에서 이방원의 아내 역할을 맡은 여자 성우의 교태스러운 목소리를 듣다가 숨이 넘어갈 뻔했다. 나도향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보습학원 면접에서 국어 강사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물었고, 나는 김동인의 <감자>를 꼽았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몇 번이나 미소를 지었는지 모른다. 구보는 사랑스럽고, 박태원의 문체도 좋다. 내가 사랑하게 될 소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박완서의 글은 맛깔스러우면서도 여성 독자들로 하여금 묘하게 움찔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늙은 여자'라는 단어가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감상하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2013/12/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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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from 기록 2014. 11. 8. 18:33
지나치게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조심해야한다. 인사성 밝은 원룸 이웃 남학생이 포르노 신음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오도록 만드는 인간인 줄 누가 알았겠나

2013/12/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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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실습

http://211.43.206.85/n_Lecture/?LessonIdx=nhLee01&LessonPart=novel



 

* 출생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시기

1.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진주 목걸이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2.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 부평구)다.

3. 내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인천 부평구)에서 지냈다.

4.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세 살 쯤 되었을 때 엄마 등 뒤에 업혀 장롱을 바라보며 저게 장롱인 걸 알겠는데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던 기억)이다.

5. 어린 시절 가장 기뻤던 일은 (아무 걱정없이 여동생과 말장난하며 놀던 기억, 사촌 언니들로부터 체스를 배운 기억)이다.

6. 가장 슬펐던 일은 (동화 구연 대회에 나가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암기한 내용을 말하지 못하고 집에서 동화책을 공수해 와 책을 펼치고 청중들 앞에서 읽었던 굴욕 사건)이다.

7.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따랐던 사람은 가족 중 (아빠)였다.

8. 그 사람의 성격은 한 마디로 (친구 같으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9. 어린 시절 나는 (얌전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10.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밀크 카라멜)이었다.

11.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물건은 (여동생이 탐내는 물건)이었다.

12.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끝말잇기와 스무고개)였다.

13.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TV가 있고 온기가 도는 안방)이었다.

14. 어린 시절 내겐 특이한 버릇으로 (방에 있는 액자의 구석이나 벽지의 문양을 골똘히 응시하며 특정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까지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15. 어린 시절 나는 동화책 중 (공주인지 선녀인지 모를 여자가 남자 주인공이 구해온 붉은 열매를 먹고 나서 상태가 좋아졌다는 내용, 6번 동화 구연 대회에서 발표했던) 이야기를 좋아했다.

16. 어린 시절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똑똑한 아이)가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17. 어린 시절 나는 자라서 (간호사,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다.)

18.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착)하다고 칭찬하셨다.

19. 어린 시절 나의 부모는 내가 (여동생을 돌보지 않고 둘이 자주 싸운다고) 꾸중하셨다.

 

 

 

* 초등학교 입학 후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의 시기

1. 나는 (1992년 3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2. 초등학교의 첫 기억은 (이분단 앞줄에 앉아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선생님 말씀대로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던 기억)이다.

3. 1학년 때 첫 짝꿍은 (첫 짝꿍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부를 잘 하던 남자 아이)였다.

4.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젊은 미혼 여성)이었다.

5. 그 선생님의 특징은 (우리 집 근처에 살았고, 다소 깐깐한) 사람이었다.

6. 초등학생이었을 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쓰기 교과서에 습자지를 덧대어 한글 베껴쓰기 과제를 하던 중 획이 뜻대로 반듯하게 그려지지 않자 나는 성질을 내며 몇 번이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결국 습자지가 찢어졌고,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과 면담을 했던) 일이다.

7.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는 (없다. 학년마다 친했던 친구가 달랐다. 그나마 SMI, HJS과 친했다.)

8. 그 친구는 내게 (손글씨를 예쁘게 쓰도록) 영향을 준 것 같다. - SMI

9. 내가 가장 잘했던 과목은 (국어)였다.

10.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인 이수경 혹은 김수경) 선생님이다. (성이 기억나지 않는다.)

11. 좋아했던 까닭은 (반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12.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 중 내가 가장 싫어했던 선생님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13. 싫어했던 까닭은 (스승의 날, 대놓고 선물을 가져오라 말하고, 정박아였던 학우의 뺨을 때리며 화풀이하던 폭력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 공상에 관한 질문

14. 초등학생 때 나는 (나만의 신과 대화하거나 죽음)에 관한 공상을 많이 하곤 했다.

15.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우주소년단에서 내가 만든 물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된 일)은 자랑스럽다.

16.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엄마 뜻대로 학원 수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일)은 후회스럽다.

17.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국문과 교수 혹은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18. 그 시절 부모님의 나에 대한 기대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19. 그 때 (엄마와 나를 때리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지금도 후회가 된다.

20. 그 때 (학교에서 전교 대표로 두 명을 뽑아 대부분의 비용을 학교에서 책임지고 일본으로 견학을 보내주는 과정이 있었다. 내가 그 중 한명으로 선발되었는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때라 비행기 표값마저 지원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나보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 돈에 대한 분노, 치욕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남들보다 꽤 빨리, 어린 나이에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일본에 갈 수 있었다면) 지금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 과제

-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보고 느낀 것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써보자

- ‘나의 어린 시절은’하고 중얼거려보고 떠오르는 첫 기억을 생각해보자

 

2013/12/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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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권리가 있어

from 기록 2014. 11. 8. 18:32

 

 

 

2013/12/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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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pi

from 기록 2014. 11. 8. 18:31

2013년 최고의 영화였다. 처음으로 OST를 들었는데, 훌륭하다. 성가를 듣는 느낌이다. 오늘 마이클 센델의 정의 강연을 보는데,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들더라.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

 

2013/12/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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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절제 수술 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앞으로 목욕탕에 가지 못할거라 말씀하셔서다. 복원 수술 받고 목욕탕 가면 되지요. 요즘 의술도 좋아졌겠다, 유방암 1기면 금방 나아질텐데 왜 곧 죽을 사람처럼 말씀하세요? 라고 답했다가 그게 딸년이 할 소리냐는 핀잔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착한 딸은 아닌 것 같다. 오전에 잠깐 <이방인>을 읽었는데, 엄마의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뫼르소 생각이 났다.

2013/12/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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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arms

from 기록 2014. 11. 8. 18:30

http://youtu.be/bJV71cW40OQ

관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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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끝

from 기록 2014. 11. 8. 18:29

마르코 복음서 필사 끝! 

2013. 11. 3 - 2013.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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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래방 가기

from 기록 2014. 11. 8. 18:29

아침부터 노래방에 가고 싶었다. 결국 귀가길에 홀로 노래방을 찾았다. 한 시간에 이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주인 아저씨 아들로 보이는 분이 혼자 부를거면 만원으로 요금을 깎아준다길래 냉큼 방으로 들어갔다. 이소라와 리쌍의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다. 노래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추가로 서비스 받은 30분을 채우고 가게문을 나서려는 순간, 주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젊은 여자 혼자 늦은 밤에 왜 노래방에 왔는지 궁금해하시는 눈치다. 나도 모르게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감정을 풀려고) 혼자 왔다고 이실직고해버렸다. 이렇게 예쁜데 왜 헤어졌을까? 30분 더 줄게. 더 불러. 아저씨가 등을 밀었고 나는 머쓱해하면서 다시 방에 들어갔다. 쓸데없는 의심이 많은 나는 그 와중에도 아저씨가 왜 내 등에 손을 대시지? 성추행범이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열창했다. 결국 노래방에서 혼자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른 셈이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으로부터 좋은 사람 만나라는 덕담까지 들었다. 노래방 사장님께 미안하다. 

2013/12/18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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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america 표지

from 기록 2014. 11. 8. 18:28

한국 영화, 미술잡지도 표지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2013/12/2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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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월급을 12월에 받다.

from 기록 2014. 11. 8. 18:27
10월 중 5일만 근무했던 잡지사로부터 밀린 월급을 어제 받았다. 퇴사할 때 돈은 받지 않겠노라 말했다. 회사 고문은 퇴사 후 내게 전화를 걸어 기대했는데 실망이라며 횡설수설했고, 팀장은 오일치 일한 월급은 줄 테니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아 팀장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고 지냈는데, 어제 잡지사 직원으로부터 입금이 늦어 미안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대하지 않은 돈이 생겼지만, 이 일로 머리 썩었던 걸 생각하면 빨리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2013/12/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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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unny christmas

from 기록 2014. 11. 8. 18:26

24일은 도서관에서 파이 이야기를 읽다가 성당에 들러 미사를 보았다.

25일은 자취방에 누워 강신주의 다상담과 클래식을 들었다.

 

2013/12/2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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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from 기록 2014. 11. 8. 18:25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폭력은 시작되죠. 그들은 공포를 조장하고, 또 폭력을 유발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문제는 상대편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이에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혁명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폭력에 대응할만한 무기를 갖고 있지 못하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저항하고, 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겁니다. 진보적인 좌파의 폭력에 대한 대응은 방어적 폭력(defensive violence)입니다. 당신들이 공격을 할 경우에 우리는 대응할 것이다라는 식의 폭력인 것이죠. 공격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 170p.

 
방어적 폭력이란 (알랭  바디우가 제안한 개념으로) 국가 권력에 거리를 두고, 그 권력의 지배에서 빼낸 자유 영역들을 건설하며 오직 이 '해방구들'을 분쇄하고 재점유하려는 국가의 시도에만 물리력을 동원해 저항하는 것이다. - 171p.
 
제가 유일하게 옹호하는 폭력이란 테러리스트의 폭력이 존재하거나 독재적인 정권과도 같은 상황에서, 다소 급진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형태를 띠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적인 법률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듯 행동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자유의 영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 172p.
 
따라서 폭력에 관한 두 가지 경쟁적 지점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폭력은 이미 여기에 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이 폭력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폭력이 언제나 늘 있으며, 이를 내재한 그 자체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시민불복종과 같은 형태의 폭력과 잔혹한 물리적 폭력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자신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주 확실한 무기이며, 점점 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는 결코 상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국가란 그 작동이 위협받거나 가능하고 있다고 인식될 때에만 제 구실을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많은 이들이 권력을 무시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을 구성할 때, 사람들은 엄청난 힘을 갖게 될 것이고, 국가는 변화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 175~176p.
 
(중략) 이것이 바로 제가 옹호하는 폭력입니다. 상징적 폭력의 형태 말입니다. 이러한 저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있어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유는 구약성경 중 최고라 생각하는 욥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신이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외압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욥의 편을 드는 이야기가 그려져있죠. 또 하나는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입니다. 이 책에는 인간에 의해 선출된 폭군, 즉 독재자에 대한 사람들의 노예적 예속 상태는 사실상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대하고 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마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도래하죠. 권력이나 정권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에는 사람들이 이를 더 이상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권력의 힘을 무시하게 되는 지점 말입니다. 제가 늘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현상들입니다.  - 1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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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을 긁는 소리

from 기록 2014. 11. 8. 18:25
한 달 전 산책을 하다가 나뭇가지를 보고 가슴이 시려 고개를 돌렸다. 뾰족한 가지가 나를 찌를 것만 같아서다. 르네 마그리트의 나무 그림과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2013/12/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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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

from 기록 2014. 11. 8. 18:23

주일 교리 수업이 끝나면 조원들과 성경을 읽고 (알콜중독자 모임처럼)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속한 조에 신앙보다 사람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성당을 찾는 것으로 보이는 60대 할머니가 계시다. 카톨릭보다 불교가 어울리는 어르신이다. 할머니가 더듬거리며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나는 성스러움을 느껴 넋이 나가 내가 읽을 차례를 놓치곤 한다. 미끈한 목소리로 기도를 부르짖는 신부보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2013/12/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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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를 쓰지 못해 관심 있는 잡지사에 지원하지 못했다. 예전과 달리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감상에 섞인 잡념을 발라내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비단 영화감상 뿐만 아니라 밥을 먹으면서도 넋이 나가있고 길을 걸으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해 문제다. 그래서 난독증이 낫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소리, 환경이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많이 무섭다.

2013/12/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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