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from 글쓰기 2015. 6. 16. 23:09



사진은 내가 즐겨 찾는 우리 동네 도서관.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들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던 기억이 난다. 숙제가 끝나면 함께 도서관을 찾은 친구나 동생과 지하 매점에 들러 컵라면을 홀짝였다. 식사 후에는 다시 자료실로 올라와 서가에 꽂힌 서명들을 훑은 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었다. 키에 비해 높은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독서를 하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져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그럴 때면 꼿꼿이 앉아 두꺼운 책을 읽는 옆 사람을 곁눈질로 구경하며 감탄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사설 독서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막힌 책상 위는 공부하며 몽상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사준 책이 많았고, 숙제는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에 공공도서관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반수를 준비하면서부터 공공 도서관을 찾았다. 수능 공부는 뒷전에 두고 폴 오스터, 김영하,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빌려 사설 독서실에서 열심히 읽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교내 도서관을 이용했다. 공공도서관에 비해 쾌적한 환경과 깨끗한 장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6년부터 3년 동안 모교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사서 직원이 도서관에 들여올 책들을 선택하고 주문하여 신간 도서가 입고되면, 장서에 도장을 찍고 도난방지 마그네틱을 심은 뒤 바코드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청구기호별로 분류하는 일이 내 담당이었다.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보다 빨리 신간도서를 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CDTAPE를 제외한 별책부록들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졸업 후 짧은 사회생활을 마치고부터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공공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정독보다는 발췌독을 통해 얕고 넓은 호기심을 채웠다. 심리학과 철학 관련 도서를 찾아 읽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내게 도움이 되는 문장이 나오면 수첩에 옮겨 적어 두었다. (독서 일기를 쓰지 않은 건 후회가 된다.)

몸이 아프고 난독증이 찾아오면서부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를 이용했다. 주로 소설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었다.

재취업을 앞둔 요즘은 다시 공공도서관에 들러 토익 공부를 한다. 조용한 열람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치열한 열기가 느껴진다. 메르스로 에어컨 가동이 중단된 오늘도 열람실은 만석이다.

주부가 장을 보러 마트에 들르듯 나는 도서관에 간다. 엄마는 날보고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 게 누구냐며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나는 도서관을 찾는다. 젊은 날, 갈팡질팡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꾸준히 도서관에 들락거린 걸 보면 애초에 사서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공부나 할 걸. 한때 내 꿈은 공공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사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쉽고도 무척이나 어려운 꿈이다.

,

쌀국수

from 글쓰기 2015. 6. 14. 21:56

여동생 생일을 앞두고 아빠와 나, 그리고 여동생 셋이 쌀국수를 먹고 왔다. 쌀국수는 베트남과 태국 두 나라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의 쌀국수의 차이는 육수에 있다. 베트남 쌀국수보다 태국 쌀국수가 양념이 강하다. 오늘 내가 먹은 건 양지와 차돌 부위의 고기가 들어간 베트남 쌀국수였다

식당에서 쌀국수를 주문하니 생숙주와 절인 양파, 단무지, 레몬, 얇게 썬 고추가 곁들여 나왔다. 숙주와 양파를 한 움큼 넣고 휘저어 숨을 죽인 뒤 레몬을 국수 위에 뿌려 먹었다. 종지에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붓고, 고기와 양파를 찍어 먹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3:1의 비율로 섞어 고기를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고 한다.

말없이 국수만 후루룩 잡수시는 아버지에게 맛이 괜찮으냐고 여쭈어보니, “한 번은 먹을 만한 맛이네하고 짧은 평을 내리셨다. 육수가 진해 연갈색 국물이 짜게 느껴졌지만, 풍미가 독특한 이름 모를 노란 빛깔의 차를 마시니 갈증이 풀어졌다.

비 오는 날이면 꼭 포(pho)를 먹는다는 유학생 친구가 떠올랐다. 나도 추진 날에는 라면보다 열량 걱정 없는 담백한 쌀국수 한 그릇이 먼저 생각난다.

,

우울증

from 글쓰기 2015. 3. 5. 17:49

우울증에 걸렸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뒹굴고 먹고 자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취업이 안 돼 무기력해 진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오늘 산책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여동생이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면?’ 상태가 나아지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막상 당시에는 겁에 질려 방바닥에 누운 채 모두가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며 몸을 떨곤 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보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 고통 없이 내가 죽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게다가 왜 이리 움직이기가 싫은지 샤워를 하려면 큰 결심을 하고 방문을 나서야 했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지내다보니 내 행동반경은 채 5m도 넘지 않았다. 살이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50kg 중반을 유지하던 내 몸무게는 어느새 70kg 가까이 늘어 있었다. 살이 찌니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활동량이 줄어 다시 살이 찌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제일 무서운 건 기억력 감퇴였다. 책을 읽는데 독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읽은 구절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책을 한 두 페이지 읽고 나면 기력이 떨어져 잠이 쏟아진다. 가장 즐기는 취미인 독서마저 할 수 없게 되자 일상은 더욱 무료해졌다. 머리가 무겁고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우울증에 좋다는 운동을 하고 싶어도 날씨가 추워 (실은 몸을 꼼짝하기도 싫어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글쓰기에는 놀라운 힘이 숨어있다. 국내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글을 읽고 나서 마음의 고통을 잠재우거나 우울한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열 알의 발륨(valium)이나 백 알의 프로작(prozac)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일기쓰기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치유적 글쓰기 중 하나라고 한다. 자신의 일상적 경험과 감정, 욕망, 기억을 표출하기 때문에 내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욕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에는 빈 종이를 꺼내 무엇이든 적어 나가자. 소설이든 일기든 수필이든 상관없다. 그저 묵묵히 글자를 적어 나가다 보면 마음에 있는 응어리가 풀리고 자신과 대화를 하며 자기를 수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면접을 보고 왔다.

from 기록 2015. 2. 27. 15:54

면접을 보고 왔다. 각진 턱의 면접관은 회사 소개를 하며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지원한 직무는 마케팅인데, 사내의 말을 들어보니 말이 마케팅이지 영업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6일 근무였다. “, 저는 주5일 근무로 알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니 면접관이 마지못해 일할 의향이 있냐는 식으로 물어보았다. “5일 근무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럽지만 주6일 근무라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형식적으로 답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영혼 없이) “제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물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 떨어뜨리지 말 것!)

,

최근 읽은 책들

from 기록 2015. 2. 25. 22:2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
가격비교



뭐라도 되겠지

저자
김중혁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1-10-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문단의 호모 루덴스’ ‘멀티플레이어’ ‘인간 호기심 천국’ 김...
가격비교


소설가 김중혁씨를 알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가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다. 다소 짓궂은 면이 없지 않은 영화 평론가의 말에 재치있게 응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팟캐스트를 계속 듣다보니 사람이 선하다는 게 느껴졌고, 이 소설가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산문은 일상을 주제로 저자의 생각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기 때문에 가장 솔직한 글이 된다. 책을 읽으며 뭐라도 되겠지라는 서명처럼 삶을 낙관하는 저자의 태도에 흐뭇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중혁 작가에 대한 설명은 앞서 말한 영화 평론가 이동진씨와 함께 펴낸 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책날개에 적힌 프로필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데미안을 통해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
가격비교



보다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
가격비교



소설가의 일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1-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
가격비교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어지러이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

-. 뭐라도 되겠지 :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 데미안 : 텍스트에서 뭔가 심오한 깊이가 느껴졌지만 최근 독서를 자주 하지 않은 탓에 줄거리만 이해하는 정도에 그쳤다. 왜 고전인지 알겠으나 정독해야 할 책.

-. 보다 :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소설가 김영하의 글.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국내 비정규직과 빈곤 문제를 다룬 글이 보인다. 신선한 충격.

-. 소설가의 일 : 소설쓰기에 대한 책. 김연수 작가는 초고를 '토고'라 부른다. 어찌나 절묘한 비유인지!




,

편집자의 일

from 글쓰기 2015. 2. 5. 19:25




출판사 편집자 모집 공고를 보고 무작정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어리석게도 원서를 내고 난 뒤에서야 편집자의 일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빌려본 책이 편집자란 무엇인가. 제목 그대로 편집자의 모든 일을 다룬 책이다.


대부분의 전문직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편집자는 장인(匠人) 정신이 요구되는 직업 중 하나다. 출판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수많은 원고를 읽어야함은 물론이고, 출판이 결정된 순간부터 손익을 예측하고, 책의 구성을 책임지며,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홍보에 주력하며 독자와 소통해야 한다. 단지 책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하기에는 버거운 직업이다. 작가와 달리 책 밖으로 쉽게 드러나는 직업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책을 보면 느낄 뿌듯함은 산고를 치른 여인이 아이를 보는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물며 그 책이 독자의 큰 사랑을 받았을 때의 기분이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국내 편집자 5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뛰어난 편집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편집자의 전문적인 능력으로는 첫째가 원고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었으며, 둘째로는 문장력이었다. 편집자의 필요 덕목으로는 강인한 체력이라는 결과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세심함이 편집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교정이나 교열을 볼 때에도 물론이거니와 저자, 편집장, 발행인, 디자이너, 독자와 끊임없이 교류하려면 대인관계에서의 세심함 역시 필요조건일 것이다.


저자가 뒷부분에서 출판의 미래에 대해 제언한 내용도 흥미롭다. 검색 엔진이 차례나 각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도 편집자의 역할은 대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기 위해 콘텐츠를 재편집하는 편집자의 역할은 새롭게 요구될 것이라고 한다. 온라인 환경에서 양질의 저자를 선별하는 법, 창작과 편집 그리고 독서의 과정을 어떻게 디지털 환경에서 공유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 역시 충분히 생각해볼 거리다.


,

컴퓨터를 고치다가

from 기록 2015. 2. 5. 01:01

PC가 고장 나서 포맷을 했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지우지 못했는데, 본의 아니게 사진을 정리한 셈이 되었다. 남은 사진은 하나씩 확인하면서 독사진을 남겨두고 사진을 지우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함께한 너. 뭐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지. 넌 최고의 남자친구였어. 이젠 아주 오래 지난 이야기 일 뿐이지만.

,

액트 오브 킬링

from 글쓰기 2015. 1. 26. 12:31

이 영화를 본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영화 ‘액트 오브 킬랑’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참여한 당사자들을 모아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특별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의 부조리한 상황을 꼬집었다. 학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저지른 끔찍한 살인과 고문장면을 태연히 재연한다. 심지어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둔기로 사람을 죽이면 피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철사를 사람의 목에 감아 천 명을 살인했던 과거를 재연한 뒤 웃고 춤을 춘다. 반면에 그는 손자가 새끼 오리의 다리를 다치게 하자 이를 타이르는 평범한 노인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절대악보다 더 악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고 저지르는 행동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 군은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을 반공분자로 몰아 살해했으며, 피해자는 250만 명이 넘는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군부 정권이 ‘판차실라 청년회’를 앞세워 아직도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판차실라 청년회는 인도네시아의 부통령이 공식 행사에 참여해 연설을 할 정도로 큰 조직이다. 이들은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대외 명분과는 달리 실제로는 시장을 돌며 중국 상인들에게 돈을 빼앗고 불법 도박과 밀수를 서슴지 않는 조직이다.


대학살의 주범인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본 뒤 바지나 머리카락의 색을 바꿔야겠다는 말을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내비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와르가 철사와 자루를 집어 들고 살인 방법을 설명한 뒤 구역질을 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꼈지만, 이들이 만든 영화에서 철사를 목에 감은 피해자가 성직자 옷차림을 한 안와르에게 “천국에 갈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는 어이없는 연출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미국이 인도네시아 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 중 하나라고도 말한다. ‘액트 오브 킬링’은 비단 인도네시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인도네시아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로 봐달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과거가 떠오르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에서 천 번이나 상영되었다. 이로 인해 대학살이 공론화되고 피해자들은 극심한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엔딩 크레딧에 Anonymous라는 자막이 수없이 올라가는 걸 보면 아직 인도네시아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

from 글쓰기 2015. 1. 2. 22:13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짧고 깊은 잠을 청했다. 어제도 윗집의 발자국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 탓이다. 잠에서 깨어나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어제 인터넷으로 알아본 원룸 입주자가 집을 보러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교와 적당히 가깝고 월세도 저렴하거니와 바로 맞은편에 경찰서가 있어 점찍어둔 집이다. 급한 마음에 끼니도 거른 채 원룸으로 향했다.

우편함에서 방주인이 보관해둔 열쇠를 꺼냈다. 매물로 나온 집은 인터넷을 통해 보던 이미지와 달랐다. 건물 입구를 열쇠로 열고 들어가자마자 회색 시멘트 계단과 복도를 둘러싼 회청색 벽이 보였다. 90년대 유행하던 여관을 개조해 만든 원룸이었다. 문을 열고 방문을 들여다보니 감옥이나 다름없어보였다. 방 크기는 245mm인 내 발을 기준으로 가로 열 걸음, 세로 일곱 걸음 가량이다. 현관 오른쪽에는 성인 여자 한 명이 겨우 샤워를 할 정도로 비좁은 화장실이 보였다. 세탁기나 싱크대는 없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이곳에 살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와 빨래를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었다. 저는 그냥 잠만 자고, 손빨래는 화장실에서 해결했는데요. 건물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탁은 어떻게 하는지 묻자, 그 방은 원래 세탁기가 들어갈 수 없는 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잘라 동파가 되지 않게 세탁기를 설치해줄게. 세탁기는 입주자 본인이 가져와요. 세탁기 사오면 수도비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세탁기 많이 안 돌리면 몇 천원 빼줄 수 있고. 네? 지원해주신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한 달에 두세 번 돌리는 건 괜찮은데, 너무 많이 돌리면 안 되는 거고. 아. 그럼 세탁기 돌릴 때 들어가는 수도세 지원해주시는거에요? 글쎄 내가 거기 옥상에 물탱크 안쪽에다가 세탁기 설치해준다니까.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싱크대는 없나요? 그 방은 원래 없어. 대신 학생한테 인덕션 하나 줄게. 그럼 전기세 많이 나오잖아요. 버너는 안 되나요? 원래 안 되는데, 사고 안 나게 고급형 사오면 허락해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탁기는 설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아보고 연락을 줄게요.

통화를 마친 나는 일어나 방에 한 가운데에 섰다. 사방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시멘트 바닥과 벽에서 느껴지는 한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여관 건물이 시야를 가려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 고개를 숙이니 비좁은 골목에 일렬로 놓인 쓰레기통과 폐지 더미가 보였다. 새벽에만 조금 시끄럽다는 세입자의 말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나침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보니 북향이다. 이곳에서 지내려면 화장실을 부엌처럼 쓰고, 버너 폭발 위험을 감수하고 식사를 하면서 냉기를 견뎌야 한다. 방에 짐이 다 들어가지 못할 텐데. 빨래를 못 할 수도 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오래 지내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던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벽간 소음이 없으니 살 만하지 않겠나. 책 하나는 잘 읽히겠네. 경찰서도 가까우니 치안은 확실하고. 스스로 타협을 하는데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집 여자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시멘트 복도를 걸은 뒤 내가 있는 방 앞으로 난 공용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소리였다. 이 방은 복도 끝 계단 통로 바로 앞에 위치해있어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갑자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이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남향 단독 주택. 햇빛 쨍쨍한 날에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이불을 빨아 옥상에 널 수 있는 곳. 가을이면 돗자리에 붉은 고추를 늘어놓고 말릴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책도 잘 읽히고 적당히 들리는 사람 말소리에도 예민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이 어렵겠다는 말을 전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한참이나 스스로의 무능을 탓했다.

,

글쓰기

from 글쓰기 2014. 12. 28. 02:39

책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내가 언제부터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했을까. 성인이 된 후 독서량이 급격히 줄은 탓도 있지만 제일가는 이유는 자기검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내 글은 심지어 일기마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두운 나를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었다. 백지를 보면 불행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내 느낌을 표현하는 글짓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학부생 때 독서 감상문 따위를 제출하며 쾌감 비슷한 걸 느꼈다. 내 감정을 다듬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내 안에 몽글거리는 무언가를 밖으로 빼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잠시나마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부분의 창작자가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깊은 곳에서 잠자던 감정 덩어리들은 밖으로 빠져나와 글로, 음악으로, 혹은 조형물로 표현된다. 창작자는 최초의 덩어리를 어떻게 다듬을지 고민할 것이다. 덩어리를 더하거나 빼거나 때로는 뒤틀어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든다. 중요한 건 덩어리의 핵심을 손상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 중요한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술가의 직관은 언제나 옳다. 내가 글쓰기를 두려워한 두 번째 이유는 내 인식의 필터를 믿지 못해서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 생각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글은 작가의 인식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문, 다독, 다상량. 그리고 많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어떤 음식을 맛보았으며, 무슨 감정을 느꼈는가. 노트에 오감을 기록해두면 좋은 글감이 되겠다. 글쓰기에 대한 오감을 떠올려본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순간의 서걱한 촉감, 각진 연필을 꽉 쥐고 나면 오른손 중지 왼편에 느껴지던 굳은살, 새 노트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을 베던 종이날,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종이 그리고 종이냄새, 원고지의 가지런한 빨간 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쓴 희곡 정도다.


지금은 (그나마도 짧았던) 회사생활을 접고 재취업을 위해 토익 시험을 준비하며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다독, 다작만큼 좋은 스승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이곳에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올리려 한다. A4용지 한 장을 빼곡히 글로 채우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개중에는 말끔한 글도 있고, 지금처럼 두서없는 글도 있겠다. 중요한 건 어떻게든 계속 쓰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매일 글을 쓰다보면 지금보다 한결 나은 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연수 작가는 그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작가를 ‘현실에서 실패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기억의 우물을 퍼 올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인간 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꺼내 보이는 존재들.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글쓰기를 작가의 삶을 파먹고 사는 촌충에 비유한다. 글쓰기가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운 직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글쓰기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바다.



,

토익 공부중...

from 기록 2014. 12. 15. 15:40

재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하고 있다. 하루종일 방에 누워 책을 뒤적이다가 잠이 든다. 점수가 잘 나와야 할텐데...

,

이사 준비

from 기록 2014. 11. 27. 19:10

자취생활을 끝내고 본가로 돌아가기 위해 이삿짐을 꾸리는데, 짐이 많아서 놀랐다. 용달 업체에 전화해서 이사 비용을 알아보았다. 10만원에 서울에서 인천까지 기사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몸이 바빠서인지 잡념이 사라졌다.

,


초 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C를 합정역에서 만났다. 나와 성격이 정 반대인 친구다. C는 엄청난 긍정주의자다. 서로 아픈 부분이 비슷하기도 하고 의외로 통하는 구석이 꽤 있다. 이날 친구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에게 내 고민도 털어놓았다.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 걱정해주던 친구가 다음날 아침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나태해지면 관객들이 재미없어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2013/10/18 14:43

,

생리 불순을 낫게 하는 법

from 기록 2014. 11. 9. 09:09

고3때에도 생리를 거른 적 없는 나인데, 최근 몇 달간 생리를 제 때 하지 않아 고생했다. 8월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9월에는 엄마와 여동생 앞에서 아빠에 대한 내 생각을 털어놓았을 때, 10월에는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오늘에서야 뒤늦게 생리를 시작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 순간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마음이 편치 못했던 때라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2013/10/16 19:51

,

외할머니 생신

from 기록 2014. 11. 9. 09:09

12일 토요일, 인천에 있는 외가에 들렀다. 일흔여섯번째 외할머니 생신을 앞두고 외가 친척들 대부분이 모였다. 외할머니께서는 그간 서운한 감정이 많으셨는지 매년 크게 열었던 외할아버지의 생일잔치와 당신의 생일을 비교하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이 상황에서 폐암 투병중인 외할아버지께서는 먹고 싶은 반찬을 해놓지 않는다며 자식들 앞에서 고자질(?)을 하시니 외할머니께서 화를 낼 법도 하다. “나 당뇨 걸렸을 때 어땠어?” 외할머니께서 당뇨로 입원해 계실 때 받은 자식과 며느리의 뒷바라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느끼신 모양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엄마는 민망한지 그저 웃기만 하고, 이모와 삼촌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외손주인 내가 나서야 할 때다. 제가 돈 벌고 결혼하면 나물 반찬 많이 해올게요, 말씀드리니 당뇨 걸리면 식사 조절해야 해서 많이 먹지도 못한다며 말을 흐리셨다. 나도 안다. 반찬이나 용돈보다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으신게다.

 

2013/10/15 12:55

,

* want 적어보기

"나는 (         )을 하고 싶다."에서 괄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희망사항을 열 개씩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단, must가 아닌 want를 적어야 합니다. 이를 실행 후 느낀 감정까지 적어두세요.

 

* 생각-감정 분리하여 적어보기

노트 한 면을 둘로 나누어 생각-감정 칸을 만드세요.

본인의 생각에 따라오는 감정을 분리하여 적으면 됩니다.

 

10월 19일까지.

2013/10/15 12:01

,

나를 속이지 않기

from 기록 2014. 11. 9. 09:08

수없이 다짐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2013/10/15 11:56

,

명심보감과 채근담을 읽고 있다. 혼자 살다보니 나를 다잡아 줄 격언이 필요해서다. 같은 이유로 10월 5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맹자’를 구입했다. 새벽이슬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논어’, ‘맹자’, ‘공자’가 나란히 행사 매대에 깔려 있었는데 그 중 ‘맹자’를 선택한 이유는 성선설이 좋기도 하거니와 포악한 왕은 바꾸어도 좋다는 사상이 마음에 들어서다. ‘논어’와 ‘공자’에서는 왠지 사대주의 냄새가 날 것만 같은 나의 편견 때문이기도 하고.

얼마 전 명심보감의 부행(婦行)편을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해석하기에 따라 여자들을 통제하기 딱 좋은 글이다. 당시 식자들은 대부분이 남자였으니까 그럴만도 하지. 하지만......음......

고전을 읽더라도 버릴 부분은 버리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취해야겠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삐딱한 부분이 더 기억에 잘 남을까? 내 마음이 비뚤어져서인가?

2013/10/08 00:12

,

내가 색칠한 만다라

from 기록 2014. 11. 9. 09:07

 

 

아는 동생으로부터 미술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의 주제는 만다라 도형 색칠하기. 내담자가 어떤 도형을 골랐는지도 해석에 포함된다는데, 나는 다소 뾰족한 무늬의 만다라를 골랐다.

동 생의 해석에 따르면 나는 내면에 에너지가 모여 있지만 표출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연한 녹색은 분홍색과 비슷한 사랑의 감정을 뜻한다고. 파란색은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어떤 이유에서 에너지를 안으로 감춘 채 빗장을 걸어둔 상황이다.

2013/10/04 22:44

,

 

글씨는 읽어야겠는데, 내용은 머릿속에 안 들어오기에 게임을 했다. 큐플레이는 내가 한 때 무척이나 즐겨하던 게임이다. 30분 정도 게임을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못보던 퀴즈방이 생겼던데 틈틈히 문제를 풀어봐야지. 중독되지 않을 정도로만 즐겨보자!

2013/10/03 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