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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5일의 일기

from 기록 2015. 10. 5. 07:51

이 글을 쓰는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그만두네 마네 하면서도 여태껏 다니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선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감정보다 인간적인 유대감 비슷한 그런 감정이 든다.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내가 회사 그만둬도 알고 지내고 싶다, 친하게 지내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만두지 말고 짤릴 때까지 걍 다녀, 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제밤에 여동생과 부대찌개를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커피 때문인지 잠이 안와서 밤을 홀딱 새버렸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회사 생각이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부터 부장님이 병가다. 당분간 사장이 나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텐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바보같이 또 긴장해서 지시 사항을 놓칠까봐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다. (좋아하는 선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동생과의 대화에서도 느낀 점인데 확실히 병에 걸린 후부터 머리가 예전만큼 팽팽 돌아가질 않는다. 책을 읽어도 수박 겉핥는 기분... 예전에는 책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정류장을 놓칠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는데, 몇 년 사이에 책읽기가 어려워졌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순발력이 떨어졌고. P사에 다닌 이후 확실히 내가 변하긴 변했다. (이 점을 친구 지혜가 지적해주기도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주변이 사라지고 자기 표현이 줄었다. 회사 선배가 날더러 농담으로 우울증(환자)이라고 불렀는데 발끈해버렸다. 날더러 정색한다고 중얼거리더라. 그 사람은 실제로 내가 아침마다 항우울제를 먹는 환자라는 걸 모를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상위그룹에 속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인과의 일상적인 대화도 따라가지 못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그저 허허 웃곤 한다. 내 뇌의 어느 부분이 고장났는지 모르겠다. 취미로 수학 문제를 풀다보면 머리가 좋아질까? 남은 몇 십년을 이렇게 둔한 머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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