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듯이 보였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이어폰의 볼륨을 높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침묵이 사라졌다. “잘 가” “내일 봐요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척 하다가 돌아서서 조용히 그의 뒤를 밟는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빠른 속도로 왼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가 뒤를 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나 역시 조금씩 보폭을 늘인다. 그가 편의점에 들어섰다. 편의점 근처 건물 앞에서 나는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그의 행동을 주시한다. 그의 손에 캔 맥주가 하나 들려있다. 편의점 문을 나서자마자 손에 든 맥주 캔을 딴다. 흘러넘치는 거품을 재빨리 입으로 핥은 뒤 다시 빠른 보폭으로 걷는다.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수사망을 좁히는 형사처럼 조금씩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오 분쯤 걸었을까,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정류장에 멈춰선 그는 남은 맥주를 모조리 들이킨 뒤 캔을 찌그러뜨린 후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 의자에 올려놓는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을 눈치 챘다. 그는 회사에서도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 역시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Radiohead'Down is the new up'이 흘러나온다. 그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며 무엇인가를 살핀다. 나는 그를 놓칠세라 버스 정류장 칸막이 뒤에 숨어 빈틈으로 그의 행동을 엿본다. 그는 7로 시작하는 초록 버스를 탔다.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그를 지나쳐 제일 뒷좌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그를 관찰한다. 그는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알록달록한 액정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릴때마다 그의 야윈 어깨도 들썩거렸다. 그가 내릴 정류장을 모르는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의 모습을 쫓기가 힘들어졌다. 순간, 그가 일어나 벨을 눌렀다. 나는 뒷좌석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헤치며 그가 버스에서 내린 다음 그를 따라 내렸다. 거리는 어두워져있었고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오갔다. 그의 보폭은 다시 빨라졌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터가 있었다. 가방을 뒤적이며 담배를 꺼내 문 그는 오른손으로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숨을 쉬고 뱉을 때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터에는 그 말고도 붉은 기운이 도는 머릿결을 지닌 여성과 양복을 입은 사내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흡연 구역으로 보인다. 그는 짧게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정류장과 고가도로 사이에 난 길로 들어섰다.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다.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나는 당신이 듣는 음악이 궁금하다. 편의점을 지나 동네 작은 헤어숍과 복권 가게, 부대찌개 전문점을 지나 한참을 걸은 후에 그가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냉면집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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