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magazine 'art in america', january 2014
2014/02/05 14:31
불면증 때문에 클래식 혹은 성가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재즈를 들으면 깊이 잘 수 없다. 육성(肉聲)이 느껴져서일거다. 비밥 재즈를 들을 때 특히 그렇다. 2014/02/05 17:25
통통한 사람은 마른 사람을 좋아한다.
체형은 성정을 따른다.
예민함과 너그러움은 짝이 될 수 밖에 없다.
대체로 그렇더라.
두 번째 남자친구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보다 둘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컸다.
이들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했던 탓도 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14/02/05 17:52
작년 말 동창과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아이를 낳고서부터 예상치 못한 본인의 죽음에 대비해 늘 집을 청소하고, 옷을 깔끔히 개어놓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오늘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해 두었다. (2014/02/07 19:56)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 4,18)
사랑은 앎이고, 두려움은 무지가 될 수도 있겠다.
(2014/02/08 20:03)
홍대에서 다시 사촌언니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헤어지는 길에 언니가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카프카)를 보여주었는데 내가 모른다하니 의아해하며 놀라더라.
2014/02/13 08:15
2014/02/14 13:39
2014/02/14 13:45
전날 저녁, 원룸 이웃(추정)이 대문을 부서지도록 닫은 일을 곱씹느라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동안 교묘히 내게 행했던 괴롭힘과 보복 소음이 한 번에 떠올라 억울하고 분한 느낌이 들어서다. 층간 소음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과 정보를 살피며 진지하게 소송을 고려하다가 새벽 세 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오전 미사에 불참했다. 오늘은 교리 수업 대신 4월 세례를 맞아 예비 신자와 대모의 대면식이 열렸다. 나는 대모에게 이웃으로부터 겪은 고충과 소송 이야기를 꺼냈고, 대모는 상대방이 내 반응을 보고 재미를 느껴 계속 괴롭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내 모든 상황을 아는 봉사자님은 소송은 본인에게 득이 될 게 없으니 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시고.... 교리 수업이 끝나고 모교 앞 제 본집을 찾아갔다. 전날 ebs 공부의 신 동영상을 보고 나도 공부 다이어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제본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전철을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이동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얼이 빠진 나는 한 정거장을 지나쳐 내렸다. 오늘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세 편의 영화를 본다.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잠깐 쉰 다음 러시안 소설을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웃 남학생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어떻게 소송을 진행할지, 소송에 필요한 증거는 어떻게 모을지 생각을 하느라 완벽히 몰입하지 못 했다. 급기야 러시안 소설 상영 후 GV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극장을 나와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소송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고 상영관으로 뛰어와보니 객석은 텅 비어있다. 한 시간만에 GV가 끝났나 보다. 오래간만에 통하는 정서의 영화였는데.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다. 아쉽다. 허탈한 마음에 한국영상자료원 구석 의자에 앉아 가톨릭 교리서를 펼쳤다.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 소송은 사람을 죽이는 짓과도 같을 테다. 그래서 봉사자님이 소송을 말리는 건가? 갑자기 교리서를 읽기 싫어졌다. 백날 착하게 살아봤자 뭐 하나. 바뀌는 건 없다. 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가방에 있는 영화 사전을 읽을까 싶었지만,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얕은 잠을 잤다. 어디선가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국영상자료원에 근무하는 40대 남자 직원의 말소리다. 낯익은 인상이라 기억에 남겨두었던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다녔던 모 식품회사 인사팀장과 많이 닮았다. 남자 직원은 여직원들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면 영화도 마음껏 보겠지. 얼마 전 무기 계약직에 지원했는데, 합격했으면 좋겠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극장으로 돌아와 잠 못 드는 밤을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첫 번째 남자친구와 만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뛰어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와 닿는 영화들이 있다.
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는 길, 소송 문제와 이웃을 생각하느라 나는 또 엉뚱한 곳에서 내려버렸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역까지 걸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가 내 입에서 나와 놀랐다. 엄마가 죽으면 어쩌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돌아가셔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많이 후회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역에서 자취방까지 고개를 떨구고 땅만 보며 걸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다. 이웃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거리에는 술에 취한 대학생들, 짧은 치마와 바지를 입은 어린 여학생들이 보인다. 갑자기 내 양 어깨에 가벼운 무게가 느껴졌다. 누군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술에 취한 남학생이 황급히 휴대폰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방금 제 어깨에 팔 올리셨죠?" 이제는 놀랄 것도 없다는 마음에 느긋하게 물었다. 학생은 나를 흘끗 쳐다보며 오른손바닥을 내게 펼쳐 보이고는 좌우로 흔들어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는 "술에 취한 분 같으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왜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댑니까? 사과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진짜로 사과를 받고 싶은 사람은 이 행인이 아니라 원룸 이웃이라는 생각에 말을 뱉지 못 했다. 술 마신 사람과 싸움이 붙어서 좋을 건 없다. 내 옆에는 나란히 길을 걷던 여자 둘이 있었지만 아무도 내게 벌어진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점점 이곳이 싫어지려 한다. 조금 서럽다. (2014/02/17 00:55)
2014/02/17 23:01
머릿속에 특정 낱말이 맴돌 때가 있다. 가끔은 의미조차 모르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궁금증이 생기면 어떻게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구글에 키워드를 입력하니 한 블로그에 내가 찾던 단어가 보였다. 낯익은 화면이다. 내가 2006년에 운영하던 블로그다. 일기와 방명록만 남아있다. 블로그를 정리하며 작성한 글들을 비공개로 바꾸거나 삭제한 기억이 난다.
2005년, 나는 설치형 블로그 소프트웨어인 태터툴즈를 개인 웹 계정에 설치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수능에 실패한 뒤 최초 입학한 대학에 재입학을 한 후 친구들과 학년이 달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다.
2006년 태터툴즈가 다음과 제휴하여 Tistory라는 블로그 서비스를 선보였고, 나는 자기 검열을 통과한 글만 티스토리에 옮겨두었다. 2006년 이후부터는 어려워지는 전공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힘들어 글 쓸 여력이 부족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 악성 댓글에 대한 걱정, 온라인에서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 내가 글쓰기를 멈춘 이유다. 글을 삭제하거나 숨긴 이유는 다시 읽기 부끄러워서다. 글에는 어떻게든 쓰는 이의 욕망이나 성품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쓴 글을 시간이 지나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얕은 지식을 깊이 아는 것처럼 과장하거나,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최대한 포장하여 과시한 흔적이 역력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족 문제,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돈에 대한 스트레스, 미숙한 대인관계로 현실에 불만을 느끼던 열등감 가득한 내가 쓴 글은 절반만이 진실이었다. 여기에 특유의 자의식 과잉까지 더해져 내 글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단순한 감정의 토로에 불과했다. (심지어 부정적인 감정을 영어 단어로, 그것도 철자를 역순으로 배열하여 표현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 적도 있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쓰기를 멈추고 토익 공부와 낮은 성적을 올리는 데 몰두했다. 2010년 한 취업포털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기업 인사 담당자와 전화 인터뷰 업무를 맡은 나는 업무 특성상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이 아닌 대화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자 이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관계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사람들을 만나던 어느 날 갑자기 공허함이 찾아왔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만남을 위한 만남을 갖는 내가 보였다.
2010년 7월, 회사 개발팀 직원의 SNS에서 텍스트큐브가 테터툴즈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면서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머리가 굳어버린 탓에 활자를 읽기가 어려웠다. 2010년 8월 퇴사 후 2011년 1월 모 식품회사에 근무하면서부터는 몰아치는 업무와 출퇴근에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빼앗겨 책 읽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달 후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고, 다시 글쓰기와 멀어졌다. 글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반추와 회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현실이 행복하다면 반추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던 유명 영화 평론가의 말이 생각 난다. (과장하자면) 글쓰기는 불행한 자의 유희인 셈이다. 2013년, 글 쓰는 직업을 갖기로 한 뒤 다듬어진 글을 올리고자 이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다시 보니 일기만 가득하다. 지금 나는 불행한가?
2014/02/18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