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과 돌멩이

from 기록 2014. 11. 8. 16:10

"(중략) 민주씨는 왜 손해보는 듯한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면서까지 사교성이 떨어지는 친구를 도왔을까요? 그것은 그 친구를 안정적으로 소유하며 보살핌으로써 모성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미인의 단짝친구가 너무도 못생긴 경우가 꽤 있어요. 미인 친구는 미에 대한 경쟁심이 강하기에 예쁜 친구와 단짝을 하기에는 어딘지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자기와는 도저히 경쟁이 안 되는 못생긴 친구와 절친을 맺죠. 주인집 딸과 하녀의 관계처럼요. 추녀 친구는 무엇을 얻을까요? 미녀 친구 주변에 모여드는 고품질 동성, 이성 휴먼 네트워크에 동참할 수 있죠. 노는 물이 좋아지는 것이죠." (2014/06/0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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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지식이나 식견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책임이 있습니다. 확신을 갖고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그 확신에 따라 행동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교육을 하고 있다면 교육적 맥락 안에서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014/06/1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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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사랑 :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미움 :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경향 : 우연적으로 기쁨의 원인인 어떤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싫음 : 우연적으로 슬픔의 원인인 어떤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헌신 : 우리가 경탄하는 대상을 향한 사랑. (헌신의 정서가 쉽게 단순한 사랑으로 변하는 것을 안다.)

 

희망 :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기쁨이다.

공포 :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슬픔이다. 

(공포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없는 공포도 없다.)

 

신뢰 :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기쁨이다.

절망 :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환희 :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양심의 가책 : 희망에 어긋나게 일어난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연민 : 우리들과 비슷하다고 우리가 표상하는 타인에게 일어난 해악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호의 :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어떤 사람에게 대한 사랑이다.

분노 :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다.

 

과대평가 : 사랑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대하여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 사랑의 결과.

멸시 :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하여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 미움의 결과.

 

질투 :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며,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

동정 : 타인의 행복을 기뻐하고 또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사랑이다.

 

자기만족 :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데서 생기는 기쁨.

겸손 : 인간이 자기의 무능이나 약함을 고찰하는데서 생기는 슬픔.

 

후회 : 우리들이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행하였다고 믿는 어떤 행동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

 

본문 중에서.

(2014/06/15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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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6월

from 기록 2014. 11. 8. 16:05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흥미 없던 전공을 살려야 하는 일이라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잡념이 사라졌다. 다만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일기 쓸 시간과 공상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2014/06/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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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새로 맞추다.

from 기록 2014. 11. 8. 16:05
침대에 안경을 두고 깔고 앉아 안경다리를 부러뜨린 이후 렌즈로 연명한 지 어언 두 달. 오늘 안경을 새로 맞추었다.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라 저렴한 안경원이 있다는 관악구까지 다녀왔다. 렌즈 두 번 압축에 2만 5천 원, 안경테값 2만 원을 냈다. 최소한 바가지는 쓰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안경을 낀 내 얼굴은 답답해 보였다. 사물도 실제보다 작아 보이는 느낌이고. 내 눈도 실제보다 작아 보일 거다. 그래도 이 모든 불편함을 덮어주는 건 눈이 편안하다는 사실. 돈이 모이면 상담 선생님 말씀대로 라식 수술을 해야겠다.

(2014/06/1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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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from 기록 2014. 11. 8. 16:04
본가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 왔다. 아침에 엄마와 함께 아욱국, 미역줄기 볶음, 호박조림, 깍두기, 고추장을 곁들인 생고추, 오징어포 볶음을 먹었다. 이제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슬퍼졌다. (2014/06/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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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오감일기

from 기록 2014. 11. 8. 16:04

시사 in 잡지를 읽다가 세월호 관련 꼭지를 읽는데 눈물이 났다.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서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생각으로 감정을 누르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때에는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에 잠길 때였다. 이런 순간들을 기록해두어야겠다. (2014/06/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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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마지막 주말

from 기록 2014. 11. 8. 16:03

좁은 고시원 바닥에 누워 열두 시간이 넘게 잠에 취해 지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과거의 일들. 글로 적어두기에는 짧고 잊기에는 강렬한 기억들. 그땐 그랬지. 한참을 곱씹고 정신을 차린 뒤 책을 펼쳤다가 회상에 빠지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2014/07/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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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꿈들

from 기록 2014. 11. 8. 16:02
이번 주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등장하거나 앞니가 빠지고 신발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2014/07/0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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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생각나는 사람

from 기록 2014. 11. 8. 16:01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생겼다. 책에 집중이 안돼 불편하다.

(2014/07/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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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태워서라도

from 기록 2014. 11. 8. 16:01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오지랖 넓은 나는 저러다 제 명에 못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큰 일을 겪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영혼이 숭고한 사람이던가. 자꾸만 관심이 간다. (2014/07/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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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

from 기록 2014. 11. 8. 16:00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탈이 났다. 전날 억지로 먹은 빵 때문에 다음날 하루 종일 설사를 하고 앓아누웠다. 금요일에는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서 죽을 끓여먹으며 요양을 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토요일 저녁이다. 나도 내가 민감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증상이 나타날 줄이야... (2014/07/1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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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

from 기록 2014. 11. 8. 16:00

어제부터 외근을 시작했다.

 

여자인 내가 봐도 눈을 떼기 힘든 미녀가 건물 입구에서부터 인사를 건네며 

내 휴대폰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여준다.

 

직원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망설임 없이 목례를 하고,

 

건물 밖에는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남직원들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무리지어 다니는 여직원들

네모 반듯한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반듯한 자세로 걷는 사람들

 

끝까지 내게 미소를 잃지 않는 담당 직원들

 

예전에 근무한 모 식품회사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숨이 막혀왔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

직장 내 뒷담화

편가르기

성차별

폭언

군대식 문화

따돌림

실적 가로채기

부서 이기주의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밝고 반듯한 사람들이었다.

 

지나치게 공손한 사람을 보면 무서워진다.

 

2014/07/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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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치 않은 마무리

from 기록 2014. 11. 8. 15:59

꽤 지난 이야기지만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 적는다. 5월, 봉사활동 대상자 어르신께 앞으로 연락을 드리지 못할 거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 나는 생계에 대한 걱정에 상담 치료까지 받느라 경황이 없어 어르신의 고충을 들어드릴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봉사활동이 끝나갈 즈음에야 마음을 열어 보이셨고, 공식적인 활동 기간이 끝난 후에도 나를 댁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해주셨다. 이후 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취업으로 신경이 곤두선 나는 어르신의 일방적인 연락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어르신으로부터 가톨릭 기도문 책자와 묵주 반지를 선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르신이 벽지 도배를 새로 해달라며 OO씨가 기관에 압력을 넣으라고 나를 채근하실 때마다 불편했는데... 정작 사람을 도구처럼 취급한건 내가 아니었을지. 김 할머니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앞으로 면대 면 봉사활동은 되도록 하지 않을 계획이다. 사람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다. 봉사활동 온라인 모임에 내가 올렸던 글들을 지워버리고 싶다. (2014/07/20 17:08)

 

2014/08/10 12:50

지난 주 다시 어르신 댁에 들러 원고 교정을 보고 왔다. 어르신을 대하기 여전히 쉽지 않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은 제대로 마무리 짓는 게 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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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유감

from 기록 2014. 11. 8. 15:58

주말에 소개팅을 했다. 여러 가지 일로 속상해하는 내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며 친구가 주선해 준 자리였다. 번호를 교환하고 상대방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쪽에서 나를 좋아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할 정도로 나는 이성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상대방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 주말 내내 폭식과 과수면에 젖어 지냈다. 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볼살이 쳐지고 머리칼이 정돈되지 않은 삼십 대 여자가 꽉 끼는 원피스를 입고 힘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2014/07/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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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꾼 꿈

from 기록 2014. 11. 8. 15:58
모 영화잡지 필진이 되어 글을 쓰는 꿈을 꾸었다. 꿈과 현실의 애매한 경계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말이 반복해서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마치 신의 계시 같았다. 꿈에서 깨기 싫은 나는 다시 논어의 한 구절을 되새기며 백일몽에 빠졌다. 내 욕심이 또렷이 드러난 꿈이었다. (2014/08/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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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일본

from 기록 2014. 11. 8. 15:57
(2008년 7월 9​일에 쓴 글)

기말고사가 끝나고 머리도 식힐 겸, 친구에게 일본 드라마를 추천해달라고 졸랐다. 일본 드라마라고 해야 기껏 꽃보다 남자, 노다메 칸타빌레 밖에 모르던 나는, 친구가 건네준 어마어마한 리스트에 놀랐다. 친구는 고쿠센,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워터보이즈, 마이보스 마이히어로, 1리터의 눈물, 체인지, 백야행 등등 10개가 넘는 드라마를 단숨에 종이에 적어 보여줬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내가 이 드라마들을 다 보면 또 다른 드라마들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검색창에 '일드'라고만 쳐도 가나다순으로 된 콘텐츠 검색이 저절로 뜬다. 내가 자주 들르는 웹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화장에 관심이 많은 여동생은 요새 일본 십대들의 화장 스타일인 갸루 화장을 따라하고 태닝을 하느라 야단이다. 한국에서 부는 일본문화의 열기가 거세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문화가 호감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사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을 향한 시선은 날카로워진다. 일본에 대하여 개개인이 아닌, 대다수 한국인들의 종합적인 판단은 부정적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일본의 전통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한다. '기모노와 함께 착용하는 긴 천인 오비는 어디서든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기 위해 항상 두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머슴처럼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는다.'는 속설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오비는 기모노의 특성상 옷을 몸에 맞추어 고정해야 했기 때문에 두르는 것이고,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는 이유는 옛날 무사들이 상대편이 볼 때 허리를 구부리고 먹는 자신의 모습이 비굴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그런 점에서 에도시대에 대한 공부는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일본의 문화(도시락, 스모, 스시, 가부키, 원색의 판화, 오래된 목조건물, 인스턴트 음식)는 대부분 에도시대에 발달하거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에도시대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아 막부를 개설한 때부터 1867년,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시대를 통칭한다. 이 시대는 무사계급의 최고지위에 있는 쇼군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일 지배하는 집권정치 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다. 정권의 본거지는 에도(지금의 도쿄)였다. 식량공급이 안정되고 상업이 번성하여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때였다. 

두 세 페이지에 걸쳐 수록된 화려한 참고자료 덕분에 책읽기가 수월했다. 저자는 ‘현대 일본 문화의 토대’라는 부제에 걸맞게 지금의 일본 문화가 생긴 원인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곁들여 설명한다. 음식, 생활, 오락, 사랑, 바쿠후, 의협, 괴담의 일곱 가지 꼭지로 나누어져 있어 독자의 흥미대로 읽어도 지장이 없다. 내 경우 일본의 최초 음식점은 어떻게 생겼는지, 에도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했는지, 일본의 유곽 문화는 어땠는지, 어떻게 도시락이 발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좋았다. 교과서처럼 연대순으로 기록한 짧은 사건들보다는, 기록에 남겨진 당시 서민들의 삶을 통해 에도시대 문화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사자마자 에어컨 하나 없는 자취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책을 읽었는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다. 특히 1장의 음식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촌언니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나라의 주요 음식을 살펴본다고 한다. 같은 아시아권으로 여행을 떠나면 옷이나 집은 비슷한 편이지만, 음식문화만큼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공부하다보면 기후나 국민성까지 추측할 수 있다나. 언니가 요리를 전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섬나라인 일본이 생선요리가 발달한 것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생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책에 실린 복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에도 시대에는 지금처럼 복어 독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었지만, 상류층 사람들이 기가 막힌 복어의 맛을 보고 싶은 나머지 꾀를 내어 복어 국을 거지에게 슬쩍 건넸다고 한다. 얼마 후 거지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 놓고 복어 국을 먹은 뒤 거지에게 맛있냐고 물어보았더니 거지가 모두 다 드셨냐고 반문하며 “그럼 나도 먹어야겠군요.”라고 말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도쿠가와 막부는 다이묘들에게 복어 맛을 보는 걸 금지했는데 그 이유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할 무사가 복어 먹다가 죽으면 큰 치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복어 금지령’은 우연히 복어 맛을 보고 탄복한 이토 히로부미가 폐지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복어요리를 사랑한 일본인들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일본인들 중에는 미식가가 많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내친김에 장어 이야기도 하나 더. 일본인들은 한 해에 1인당 평균 여섯 마리의 장어를 먹는단다. 일본 사람의 장어 사랑은 정말 혀를 내두를 만하다. 하지만 장어구이를 만드는 기술은 만만치 않았는데... 책의 실린 비유를 옮기자면 장어 요리의 장인이 되기 위해 '소스를 바르는데 3년, 꼬치를 끼는 데 3년, 굽는 데 평생'이 걸린다고. 소스를 바르는데 3년이 걸렸다는 말이 완전히 믿기지는 않지만, 직업 정신만큼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장어요릿집에서도 일본 특유의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졌을거라는 추측이 든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레스토랑을 연 나라 중 하나다.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세워진 계획도시인데 다이묘과 가신들이 몰려들어와 있어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17세기부터 등장했는데 유럽에서 이런 종류의 식당이 등장한 것은 19세기였다고 한다. 음식 문화에서 서양에 뒤지지 않게 발달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근대성들이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음식문화 말고도 사랑이라는 주제의 내용들도 재미있다. 직업 여성인 다유와 평범한 양갓집 아낙을 비교한 당시의 글이 재미있다. 직업 여성은 세련되게 표현한 반면, 부인과 같은 여성들에게는 바가지나 긁고 푼수같은 이미지로 비유한 문장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거나 산넘고 물건너 여성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는 ‘요바이’를 하거나, 사랑하는 상대가 동성이라도 크게 개의치 않고 열렬히 구애하는 에도시대의 모습은 지금의 개방적인 일본의 성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성문화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데 성문화 또한 한 나라의 문화이므로 우리와 다르다고 무작정 비난하지 말고 개방적인 성 문화가 생기게 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독후감 과제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지만, 읽다보니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책을 구입했다. 교양 수업을 듣다 보면 이런 부류의 책을 많이 읽게 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한답시고 출판된 책들은 솔직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다수였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게 본인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 중 제일 최악이었던 책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단연 ‘일본은 없다’를 고를 것이다. 어릴 적 베스트셀러에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일본은 나라는 부강하나 국민은 가난한 나라, 노예근성을 가진 국민들, 서양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여자들, 45초마다 살인이 일어나는 나라’로 비유했다.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나처럼 일본에 가본 적이 없거나, 비판적으로 독서를 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은 저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매년 수많은 일본 관련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없다"처럼 비하하는 책도, 그리고 확실한 근거를 갖고 비판하는 책도, 그리고 일본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책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는 책이 잘 팔리기 마련이다. 비난 보다 비판이 우선시되어야겠지만,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비판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에도일본>이라는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서평을 유명 포털, 출판사 웹사이트에 올리면 일빛 출판사 알바냐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겠지만. 

이 글을 쓰는 다음날이면 계절학기 수업이 모두 끝난다. 이번 계절학기가 끝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본어도 공부해서 일본어과 친구와 일본을 여행할 생각이다. 친구를 만나면 왜 일본에서 도시락이 발달했는지, 왜 에도시대부터 동성애가 성행했는지 물어보고 모른다면 내가 대신 답하면서 아는 척 좀 해야겠다. 일본에 가서는 장어요리, 복어요리, 초밥, 라면, 우동을 실컷 먹고 왔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기대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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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고급문화

from 기록 2014. 11. 8. 15:57
이메일 계정을 뒤적이다가 학부생 때 '미래의 고급문화'를 주제로 제출한 글을 발견했다. 허황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에, 여러모로 부끄러운 글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망상 비슷한 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과거도 내 일부니까 일단 옮겨둔다

 

(2008년 8월 10일에 쓴 글)

 

미래의 고급문화를 논하기에 앞서, 고급문화의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키치의 정의에 착안하여 키치의 구성 원리와 반대되는 것의 조합을 고급문화로 정의하기로 했다. 키치는 한 분야에 국한된 용어이지만 그 특성이 수업시간에 배운, 대중문화의 기운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키치의 특성을 통해 그와 반대되는 고급문화의 특성을 정의하기로 했다. 키치를 만드는 다섯 가지 구성 원리를 나열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http://kr.blog.yahoo.com/surkhun74/4624 참고)​

 

1) 부적합성의 원리 : 본래의 목적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형태, 크기, 형식적 내용 등이 부적절하게 결합되는 것.

2) 축적의 원리 : 형식, 내용, 기능 등의 밀집을 통해 스스로를 눈에 띄게 하는 것.

3) 공감각의 원리 : 다양한 감각 영역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

4) 중용의 원리 :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것들을 혼합하여 집단적 표준화라는 중간적 위치로 위치 시키는 것.

5) 쾌적함의 원리 : '편안하게 살자'는 사고방식으로 사물의 성격을 놀이에 가깝게 마구잡이식으로 선택한 것.

 

거꾸로 생각해보자면 이와 반대되는 것이 고급예술(=고급문화)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키치의 속성을 통해 내가 간추린 고급문화의 정의는 본질 그 자체만으로도 순수하게 가치가 성립될 수 있고 천박해 보이지 않아야 하며 오로지 한 감각 영역만을 자극하는,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다소 불편(쾌락과는 거리가 먼) 하고 대중들이 소유하기 힘든 무엇.”이 되겠다.

 

위 정의를 통해 인터넷이나 p2p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공유 가능한 모든 것은 고급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 음원, 서적은 고급문화나 고급예술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정보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추이를 생각한다면 미래로 갈수록 영상이나 음원, 서적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높아지지, 낮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매체로 대체 가능한 모든 것은 미래의 고급문화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미래 고급문화의 범주가 단번에 압축된다. 매체가 전달해 주지 못하는, 하지만 인간이 가장 느껴보고 싶은 본질적인 욕구가 무엇일까.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영상매체를 통해 성욕과 식욕을 느끼지만, 죽음의 느낌만큼은 온전히 느낄 수가 없다. 기껏해야 영상매체 속 연기자의 모습을 통해 가짜 감정을 느끼는 것뿐이다.

 

죽음에는 생명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천박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천박하게 생각할 수 없으며 순수한 인간 본연의 말초적인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내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그냥 죽음이 아니다. 사고사나 돌연사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 죽음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불치병으로 인한 죽음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사, 명예살인을 제외한 죽음에는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기 어렵다. 애당초 뽕의 기운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자살'이 어떻게 고급문화가 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과거에 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가 쉬워졌나?

복지 기관에서 친절히 독거노인들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거는 세상이다. 누군가가 외딴곳에서 자살을 시도해도, 지나가던 행인이 이를 보았다면 휴대폰으로 119에 신고할 것이고 119GPS 시스템을 통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외딴길을 자동으로 추적해 10분 내에 출동할 것이다. 미래에 기술이 발전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은 늘어날지 몰라도 자살을 시도하는 행위 자체는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먼 훗날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부에서 평생 개인 프로파일을 만들어 자살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을 감시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갈수록 세력을 확장하는 종교 문제도 자살의 어려움에 한몫한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살을 터부시한다. 지금보다 문명이 더욱 발전할 미래에는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할 날이 올 것이고, 그때쯤이면 이미 토속신앙이 아닌 불교나 기독교가 아프리카에도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른 나라로 도피를 해도 자살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국가나 종교처럼 세력 있는 집단들은 왜 자살을 인정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국가는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국가에 속한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기존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자살이 더욱 힘들어지는 미래가 온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그 자체로 소수들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가 취향의 문제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고급문화의 구별짓기와 취향의 구별짓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취향(취미)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취향을 정말 순수한 취향 자체로 생각할 수 있나? 우리는 먹고 자는 것을 취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좋던 싫든 간에 취향으로 내가 타인으로부터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취향에도 구별짓기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 보보스족이 일반인들과 구별짓기 위하여 국내에서 즐기기 어려운 취미만을 추구했듯이.

 

우리는 특정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던가, 특정 브랜드의 백을 구매하여 드러냄으로써 남에게 내 취향을 알린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미래 사람들의 취향은 어떻게 바뀔까? 소비가 아닌, 남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 자체가 취향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그 행동이 남들은 쉽게 취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더더욱 고급스러운 취미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자살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 즉 완벽하게 고급스러운 취향이 될 수 있다.

결국 힘겨루기 이야기이다.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가 고급예술, 혹은 고급문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다. 아름다움, 순수성, 표현성, 상징성, 현실성, 절대성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자살이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자살이 고급문화가 되는 시대에는 이를 모방한 문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회사는 고객에게 돈을 받고 뇌의 일정 부분을 자극해주어 죽음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식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고급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살하는 행동 자체와 나누어져 저급문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죽음을 느끼는 서비스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여러 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행위 자체는 한 번 밖에 경험할 수 없다. 특히나 자살이 강력하게 통제되는 미래에는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가 굉장한 상징적, 우월적 의미가 개입되기 때문에 고급문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이나 문화라는 것은 본질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힘의 변화에 의해 상대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뒤샹이 가져다 놓은 변기 자체에서 아우라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대부분 기존의 예술 체계를 뒤엎은 뒤샹의 행위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 자살도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자살이 고급문화가 될 수 있지? 라는 물음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살이 희소성을 갖게 되는, 고급문화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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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히치콕의 영화를 보았다. 찌르레기가 가득한 장면을 본 순간부터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부터였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거나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에 들를 때 거닐 때면 새가 보였다. 거리에 새들이 이렇게 많았나. 남자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얇은 벽지선 사이로 갇힌 새들이 보였다. 피곤한 탓이겠지. 그날 밤 남자는 검은 무리의 새떼가 자신의 심장을 쪼아먹는 꿈을 꾸었다.

불안해진 남자는 묘안을 떠올렸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외출할 때 새를 볼 수 없겠지. 하지만 버스를 기다릴 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꼭 한 두 마리의 비둘기가 눈에 밟혔다. 버스정류장의 비둘기들이 떼지어 그의 꿈속으로 찾아왔다. 야멸찬 눈매를 가진 비둘기와 눈이 마주치면 꿈은 끝난다. 그의 머릿속에 새에 대한 생각이 둥지를 틀었다. 식욕이 사라지고 몸은 야위어갔다. 계절이 끝날 때까지 남자는 대문 밖을 나설 수 없었다. 

몇 달 후, 신문에 비둘기 15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독극물이 섞인 사람의 살점을 발견해 수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2013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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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출근길에 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선반 위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환승역에서 내리자마자 손이 허전한 걸 알아차리고 역무원을 찾아가 내 사정과 함께 열차에 탑승한 시간, 가방 위치, 모양새를 설명했다. 역무원은 이리저리 전화를 걸었고, 나는 황망히 기다렸다. 하필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이라 지갑에 현금이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속이 쓰렸다. 임대폰은 어쩌지, 당장 차비가 없는데 출근은 어떻게 하나, 카드 분실 신고는 빨리해야 하는데...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데 역무원이 가방을 찾았으니 수거한 역으로 직접 찾아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긴장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환승역을 떠났다. 가방을 찾은 역에서는 내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를 물었다. 역무원은 확인 절차를 끝낸 뒤 분실물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권했다. 지갑, 휴대폰, 노트 모두 그대로다. 슬슬 지각이 걱정되기 시작한 나는 "분실물 없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역을 떠났다. 뒤늦게 진짜로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다.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성의껏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 성함이라도 여쭈어볼 걸 그랬다. (2014/08/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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